작은 관심과 고립
(買い物難民)

2026. 1. 13 요미우리신문을 읽고

by 낭만팔레트

히키코모리. 등교 거부.

한 번쯤은 뉴스를 통해 들어본 표현일 것이다.

일본어로는

ひきこもり、不登校(후토우코우)라고 쓴다.

'틀어박혀있다'라는 뜻의

동사 ' 히키코모루(ひきこもる)'에서

파생된 표현인 '히키코모리'는,

한동안 한국에서도 그대로 사용되다가 최근 들어 '은둔형 외톨이'라는 말로 옮겨 쓰이기 시작했다.


'이지메'라는 단어 역시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집단 따돌림을 의미하는 이 표현은 한국에서는 '왕따'라는 말로 더 익숙하다.


초등학교 졸업 학기에 일본에서 귀국해

전학을 갔을 때의 일이다.

처음 등교하던 날, 반 친구들은 내가 일본에서

실제로 '이지메'를 당한 적이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다행히 그런 경험은 없었기에

그렇지 않다고 솔직히 답했는데,

기대가 어긋난 듯 실망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가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반응이 오히려 인상적이다.

'학교 폭력'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

일본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 중 하나가 '이지메'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일본 사회의 이미지가

어린 학생들의 인식에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었던 셈이다.


그 무렵만 해도 '히키코모리'라는 표현은

지금처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집단 따돌림을 겪는 사례는 분명 존재했지만,

방에 틀어박혀 사회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히키코모리'가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이 변화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사회적 고립의 문제가

더 이상 학교나 청소년기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본 사회는 오랜 시간

'사회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돌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왔다.


시대에 따라 붙여진 이름은 달라졌지만,

사회로부터 고립된 이들은

단지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언제나 존재해왔다.

이지메, 후토우코우, 히키코모리로 불리던 문제들은 개인의 심리나 관계에서 출발했지만,

사회적 고립이라는 이슈는 점차

사회 구조와 환경의 문제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요미우리신문 사설은 이러한 현상을 대표하는 단어로

'쇼핑 난민'을 뜻하는 買い物難民(카이모노 난민)을 언급한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에

인프라와 인구가 집중되어 있듯,

일본 역시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에

모든 것이 몰려 있다.

전반적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지방을 중심으로 상점과 슈퍼마켓이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 장을 보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거나,

혼자 사는 고령자가 외출 자체를 부담스러워해

일상생활에서 고립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렇게 買い物難民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히키코모리가 개인의 선택이나 심리적 요인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買い物難民은 명백한 구조적 문제다.

살고 있는 지역의 환경이나 교통, 인프라 부족 현상이

개인을 고립으로 몰아넣는다.

고립의 원인이 개인에서 사회로 이동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특히 규모가 작은 지자체일수록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모든 요구에 대응하기 어렵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분명 존재하지만,

돌볼 여력이 있는 주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누군가는 돌보아야 하지만,

모두가 버거운 사회인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제도와 행정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지역사회 전체의 역할을 묻는다.

고립된 이들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사회 공동체 안에 속해 있을 때,

'고립'은 종종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히키코모리도, 買い物難民

그저 기사 속에 등장하는 타인의 모습일 뿐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남의 이야기일까?


타인과의 관계가 느슨해지고,

건강이 악화되어 이동이 불편해지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점점 부담스러워질 때,

고립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사회는 결국 개인들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고,

고립의 문제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깊어지는 것이다.


2005년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도 그 이유였다.

Nobody Knows.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 그곳에는 그들이 존재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자의든 타의든 고립되어 가는 누군가는

항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는다.


만약 지금 '고립'이라는 단어가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오늘부터 한 번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기를 바란다.


분명 그곳에 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고립되어 버린

누군가의 존재를 발견했다면,

그때 이 글을 떠올려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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