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표현, 통역되나요?
(すとんと落ちない)

2026.1.20 니혼게이자이신문을 읽고

by 낭만팔레트

과연 일본어는 한국 사람이 배우기 쉬운 언어일까? 어려운 언어일까?


흔히들 일본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고

비슷한 한자 표현이 많아 진입장벽이 낮다고들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하나같이 쉬운 언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건 바로,

일본 문화와 그들의 정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만,

특정 표현 뒤에 감추어진 본심까지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가깝고도 먼 당신.

개인적으로는 이 표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사설에 등장한 다음 표현을 보며 다시 한번 체감했다.

すとんと落ちない(스톤토 오치나이)

어떤 뜻인지 감이 오는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다카이치 총리의 중의원 해산 결정에 대해 평가하며 이 표현을 사용했다.

정확히는 胸にすとんと落ちない(무네니 스톤토 오치나이)라고 표현되었다.


우리나라 표현에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말이 있다.

すとんと落ちない는 그 반대 느낌으로,

뭔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찜찜하고 답답한 기분을 표현하는 말이다.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가야 하는데,

어딘가에 걸려서 거북한 느낌.


반대 표현인 すとんと落ちる(스톤토 오치루)는,

만화 등에서 머리 위로 형광등이 켜지면서

"아하!" 하고 납득하는 바로 그 느낌이다.

(물론 같은 표현이 칼로 썰어서 툭, 하고 떨어질 때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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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우리나라에서 한창 유행하던 밈이 있다.

외국인이 한국어 형용사를 외우는 장면에서 따온 밈이다.

"매끈매끈하다" "울퉁불퉁하다" "평평하다"

그 영상을 보고나니 새삼 외국인에게는

이 단어들의 느낌을 정확히 이해해서

사용하는 것이 어렵겠구나 싶었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표현들이지만,

외국인이 그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질감을 모션으로 표현하며 익힐 수밖에 없었고,

그 모습과 리듬감이 재미를 유발하여

밈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일본어의 경우,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가 존재하는데

이 표현들이 관용구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 느낌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어로는 의성어나 의태어를

영어표현에서 따와서 オノマトペ(오노마토페, onomatopoeia)라고 부른다.


すとんと落ちる(ない) 외에도

きょとんとする(쿄톤토 스루) : 너무 놀라 눈이 동그래져서 동작을 멈춘 상태

イライラする(이라이라 스루) : 속이 부글부글 끓으며 화가 난 상태

そわそわする(소와소와 스루) :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벌렁벌렁하며 침착하지 않은 상태

등 그 "느낌"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표현들이 참 많다.

의미보다 먼저 감각적으로 와닿아야만

비로소 이해되는 표현들이다.


すとん, きょとん, イライラ, そわそわ

이 단어들의 뉘앙스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이 막혀버린다.

그야말로 すとんと落ちない!


분명 어순도 같고 비슷해 보였는데

어라, 갑자기 거리감이 느껴진다.

특히 이런 표현들은 일상적인 언어여서 더욱 그렇다.

교과서나 학습지에 나오는 표현만으로는

수많은 오노마토페를 배울 수 없다.


그래서 일본어를 배운다는 것은

결국 일본 자체를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다못해 동물 울음소리도

언어마다 다르게 표현되지 않는가.

같은 소리를 듣고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일본어를 보다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싶다면,

뉴스보다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것이

도움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 표현을 익히기 때문에

어조가 어색해도 의미 전달은 보다 정확해질 수 있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전문 통역사로서의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순히 단어와 단어를 옮기는 차원을 넘어,

화자가 표현하고 싶은 "느낌"까지 이해한

통역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본다.

통역을 하다가 막히는 지점은 보통 어려운 자리가 아닌,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눌 때 등장하는

일상의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이 표현, 통역되나요?

적어도 나는,

이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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