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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체육샘 Nov 28. 2023

스키의 선(禪)

과정과 태도 지향 마이드 셋(Mind Set)

“나쁜 태도는 나쁜 스윙보다 더 나쁘다”. PGA 투어 통산 18회 우승과 5회에 걸쳐 라이더컵 미국 대표로 출전한 윌리엄 스튜어드의 말이다. 그는 매너가 뛰어나 필드 위의 신사라 불렸다. 운동 선수는 뛰어난 기량에 비하여 그에 맞는 태도를 갖추지 못하거나 대중에게 본이 될 만한 일련의 과정 즉, 훈훈한 성장 스토리가 없다면 진정한 스포츠 스타로 인정받기 어렵다. 이는 과정과 태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좋은 결과의 바탕에는 대부분 좋은 과정이 있고 결과 뒤에는 늘 과정과 태도의 평가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필자 또한 이리도 중요한 과정과 태도를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점검하고자 회상을 통한 성찰을 해보고자 한다.


대학 시절, 선배를 따라 스키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학내 스키를 배우고 강사도 하는 아르바이트였다. 스키를 잘 타냐고? 학군단(ROTC)을 하게 된 탓에 방학 중간 2주 훈련을 다녀오니 어느덧 스키 부진아가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껏 늘 아쉬운 스키 실력을 품고 1년에 한두 번 스키를 신는다. 흉내는 내지만 잘 탈 이유는 없는 것이다.


20대 후반, 여전히 스키장을 얼씬거리긴 했지만 잠시 회의감이 들던 때의 일이다. 같은 체육교사 친구에게 “스키, 그거 어차피 내려올 건데 왜 올라가냐?”란 말을 내뱉었다. 실력이라는 결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스키를 타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간과하고 있던 것이다. 아래, 故신해철의 말을 통하여 과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순위 프로그램에서 1등하고 이런거는 한 2주 가데요? 연말에 상받고 어쩌고 이런거 한 3주 가데요? 근데 녹음할 때 고생하고 콘서트할 때 고생하고 이런 거는 거의 평생가요 그 기분들이. 그러니까 결과에 대해 집착하니까 자꾸 사람들이 신경질도 내고 짜증도 내게 되는데. 과정이 재밌어야되는데 사실은. 그리고 결과는 시간이 요만큼 밖에 안 되잖아요. 항상 과정이 이만큼 더 길잖아요. 내가 행복하려면 과정이 재밌어야 하는데. 과정에서 그게 잘 안되요. 짜증내고 신경질내고 불안하고 이러니까. 과정을 더 즐길려고 노력을 하죠. 그래서 저는 훌륭한 사람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故신해철)     


잘 탈 이유는 없지만 즐기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결국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과정을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중하는 것은 "즐거움"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슬로프를 오르내리며 함께 스키장을 찾은 사람들과 겨울 풍경을 만끽하고 그저 눈을 미끄러져 내려오면 되는 것이다. 결과에만 집착하여 그 활동을 회피하기보다는 그 과정 자체를 단단히 즐길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오이겐 헤리겔(Eugen Herrigel)이 일본의 궁도 명인에게 6년간 활쏘기를 배우며 선(禪)을 체득한 이야기,『Zen in the Art of Archery』에서는 올바른 순간, 올바른 발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자기(自己)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여 발사 자체에 온 정신을 쏟지 않고 미리부터 성공이냐 실패냐 같은 결과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올바른 순간, 올바른 스키 턴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또한 미리 결과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분명히 마음에는 조급함이 들어있다. 그리고 스키라는 종목을 존중하지 않았다. 함께 스키장을 찾은 그 친구는 나의 태도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무지, 체육을 가르치는 교사의 언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2022개정 체육과 교육과정에서는 ‘신체활동 문화 향유 역량’을 강조하고 있으며 ‘생태형 스포츠’의 개념 또한 도입되었다. 이 중에서도 스키와 같은 자연환경형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은 신체활동 문화 향유의 실천이기도 하면서 자연과의 생태적 결합을 추구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결과에만 집중하는 태도로는 자연과 스포츠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과정을 중시하고 해당 스포츠를 존중하며 자연을 그 자체로써 대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현장에서 생태형 스포츠를 포함한 다양한 유형의 스포츠를 지도할 때도 과정과 태도의 방향을 학생들에게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뛰어난 운동 기술이 먼저가 아니라, 친구들과 겨울 경치도 즐기고, 리프트 타고 이야기도 하고, 눈을 함께 밟으며 미끄러져 내려오는 과정에서 스키의 맛과 의미를 찾게 해줘야 한다.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스포츠에 함께 참여하며 즐기는 과정이 핵심이라고 말이다. 이것이 교육과정에서 말하는 향유의 진정한 의미이자 체육교육자가 갖추어야 할 철학 중에 하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내려올 건데 왜 올라가냐고? 올라가지 않으면 놓치게 되는 과정들이 있기 때문이고 굳이 올라가야 쌓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꼭 스키로 제대로 된 선(線)을 그어야만 하는가? 어차피 올라왔다면 즐겁게 내려오면 되고 한두 번의 결과에 급급하지 않고 계속 오르내리다 보면 실력이 쌓이든, 체력이 쌓이든, 정 안되면 추억이라도 쌓이지 않겠는가? 이것이 내 스키의 선(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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