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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체육샘 Jun 13. 2024

입은 날과 안 입은 날의 차이

빤 것과 안 빤 것의 차이

무슨 이야기일까?

체육 수업용 팀조끼에 대한 이야기다.

수업 때 조끼를 왜 입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거다.

입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조차 학창시절 팀을 나눠서 축구나 농구를 할 때도 팀조끼를 입어본 기억은 없다.


기억을 회상해보면

남중, 남고 출신이라 상의를 탈의하거나 상의나 하의 중 하나의 소매를 걷어올려 팀 표시를 한 기억은 있다.


당시는 굳이 팀조끼를 입거나 표시를 하지 않아도 적군인지 아군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다들 있었고 팀조끼를 맞추고 착용하는 문화 또한 거의 없었다. 체육 선생님은 늘 공은 꺼내주셨지만 조끼까지 주시진 않았다.


학생 입장에서는 그랬다는 거.

꺼내줄 조끼도 없었겠지만.

예전과 달리(?) 체육교사가 수업 시간에 지도를 하거나 경기를 제대로 진행하려면 팀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업 준비 용품에 팀조끼는 거의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운동 기능 연습을 할 때도 조를 나눠서 조끼를 착용시킨다면 더 구조적으로 진행이 가능하다.


일단 조끼를 입힌다는 것은 교사가 수업을 제대로 할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이 조끼를 제대로 입었다는 건 수업에 제대로 참여할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조끼를 대충 목에 걸친 학생이 있다면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이상 수업 참여 의욕이 없는 학생이다.


이 때는 따끔하게 조끼를 제대로 착용하라 말해줘야 하며 고쳐입는다면 어느정도 참여할 가능성이 올라가는 것이다.


팀조끼를 착용하면 우선 학생들의 전투력은 조금 올라간다. 마치 슈퍼히어로가 최첨단 슈트를 착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체육파티 프로토콜을 위해 조끼 20개정도는 늘 필요한 것. 아이언맨 부럽지 않다.


그렇다고 팀조끼에 최첨단 기술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거적대기일 뿐이지만 색상만은 화려하다. 무려 형광색이다. 조끼가 진짜로 빛이 나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은 나름 빛나보인다. 체육관에서 열심히 땀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좋은 의미로 발광 그 자체다.


요즘은 조끼에 등번호 외에 좋은 문구들을 써넣기도 한다. 학생들이 실천할 수 있는 인성 요소들을 새겨놓는 것이다.(ex. 고운말씨, 밟은표정, 어진마음, 멋진행동 등)


덕분에 나쁜 의미로의 발광은 덜한 편.


이렇게 팀조끼를 입은 날과 안 입은 날의 차이는 비교적 명확하다. 그래서 같은 조건의 수업이라면 팀조끼를 입히는 편이 낫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 아이들이 땀을 많이 흘린다는 것. 조끼가 한 반, 두 반을 거치고 하루, 이틀이 지나다 보면 슬슬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나는 조끼를 준비하면서 늘 냄새를 맡는다.


수업 후에도 조끼가 어느정도 땀에 젖었는지 만져보고냄새를 맡는다.

젖거나 냄새가 조금 날 법하면 여유 조끼로 교체한다. 더 교체할 조끼가 없다면 이제 조끼를 세탁할 날이 온 것이다.


날씨가 덥지 않을 때야 큰 상관 없지만 날이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면 한 개 반, 한 시간만 지나도 조끼가 땀에 젖어버린다. 조끼를 세탁해야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것이다.


팀조끼를 입은 날과 안 입은 날의 차이처럼 팀조끼를 세탁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는 크다.


일단, 아이들이 팀조끼에서 조금이라도 어색한 향, 불편한 느낌을 받으면 곤란하다.


빨지 않은 팀조끼는 슈퍼히어로의 고장난 슈트와 같다. 착용도 잘 안될 뿐더러 이리저리 빨리 움직일 수도 없게 된다.

이 때 방법은 하나

세탁이다.


고장난 팀조끼는 세탁기 안에서 다시 살아나기 시작해서 태양 빛을 쐬며 완성된다.

팀조끼

오늘도

입히고, 수업하고, 냄새맡고, 만져보고, 빨고, 말리고, 다시 입힌다.


바빠 일에 쫓기는 날에도 예외는 없다.

쫓겨도 조끼는 빨아야 한다.

체육교사에게는 사실 그게 바쁜 일,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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