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의 속도로 불혹이 되다
40, 불혹이다.
아버지가 40일 때를 생각하면 이렇다.
대구 동성로 인근 D 보험회사를 다니셨고 남자 아이 둘이 있었지만 육아는 아내, 즉 어머니가 전담하셨다.
아버지의 10대 시절을 보면 날렵했지만 40 무렵 당시는 한창 직장 생활을 하실 때라 살이 쪘던 걸로 기억한다.
출근하실 때는 온가족이 각을 잡고 아빠 다녀오세요를 외쳤으며 늦은 밤 퇴근해서는 검고 굵은 수염을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 뺨에 비비셨다.
매일 칼 정장을 입고 진열된 넥타이 중에 어울리는 것을 골라 매고 집을 나섰다. 손에는 007가방을 들고, 현대차에서 나왔던 곤색 엑셀을 타고 다녔다.
내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영락없는 아니 명백한 어른이었다.
40은 그런 나이였다.
하지만 내가 40이 된 지금, 거울을 보면 아직도 웬 청년이 아른거린다.
철은 여전히 들어보이지 않고 출근 룩은 초등학생 아들, 유치원생 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느 학생들처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출근하면 부장이지만 부원들은 나를 친구처럼 대하고 사무실에서도 손톱을 깍는다거나 드라이를 서슴없이 한다. 내가 아니라 부원들이 그렇다는 말. 퇴근은 내가 가장 늦다. 세상이 바꼈다는 말이다.
가정에서의 위치도 마찬가지. 40의 아버지는 주방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분명 심리적 거리는 더 멀었을게다.
맞벌이 가정이 는 탓에 집안일도 남자들의 몫이 있는 세상이다. 다 마찬가지지만 마흔에 직장 생활과 집안 일을 함께 처리하기란 쉽지 않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지만 요즘 남성들 또한 그렇다.
마흔이 흠은 아니지만 그것이 퍽 힘든 나이임에는 틀림없다.
신체적 전성기는 이미 지났지만 직장에서 가정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발휘해야하는 나이다.
그게 40이다.
불혹이라 하지만 여전히 혹 하며
직장이든 가정이든 붙은 혹이 많아
여전히 허덕대는.
인생에서 많은 점수를 낸 것 같지만
테니스처럼 고작 3점을 득점한 느낌의 Forty(40)다.
힘은 달린다.
힘들어야 힘이 생긴다.
나이를 운동으로 극복하고자 시도는 웬만하면 옳다.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라는 격언처럼
40에 힘이 달릴 때는 달려야한다.
마하의 속도로 40이 되었지만
마흔의 속도를
아직
누려야 한다.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