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라지자, 그 날의 표정이 다시 보였다

그때는 그게 아니꼬웠다

by 이언니

얼마 전, 회사에서 저명한 지휘자를 초청해 리더십 강연을 열었다.


연사는 대표와 절친한 친구였고, 우리가 그 지휘자의 오케스트라에 기부하는 조건으로 강연이 성사됐다.

흔히 보는 장면이다. 높은 사람들의 인맥 관리. 회사를 경유한 친분 챙기기.




예전 같았으면 한껏 예민해졌을 일인데, 요즘의 나는 조금 다르다.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일이고, 회사라는 공간에 기대할 것이 없어진 탓일 수도 있다.

나는 열심히 일을 진행했고, 대표의 VIP를 정성껏 모셨다. 그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괜히 예전 일이 떠올랐다.


예전 회사의 CFO는 연예인 지인들이 많았다.

그도 그랬다. 유명한 친구들을 자랑하고,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회사 돈으로 티켓을 사고.

철 지난 뮤지컬 티켓이 ‘문화생활 복지’라는 이름으로 배포됐고, 나는 그게 그렇게 아니꼬웠다.


연예인에게 줄 꽃을 회사 돈으로 사는 것도 싫었다.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지으며, 반강제로 팬인 척 사진을 찍는 것도 싫었다.

나는 ‘깨어 있는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불공정한 인맥 놀음에 휘둘리지 않는’ 그런 사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꼭 그렇게까지 날 세울 일이었나 싶다.


어쨌든 나는 그 복지의 수혜자였다.

내 돈 주고 보기 아까운 뮤지컬도 봤고, 그 연예인은 성실히 공연했고, 퀄리티도 좋았다.

그건 부당이익은 아니었다.


나는 단지, 그 연예인이 CFO의 지인이라는 사실 하나에 꽂혀 있었다.

말그대로 괜한 심통이었다.

아마 내 표정에 다 드러났을 거다.

꽃을 받던 그 연예인도 불편했을 거다.

미안하다. 그 연예인에게.


며칠 전, 전보다 조금 성숙해진 나는 그 연예인보다 훨씬 덜 유명한 지휘자의 싸인 책을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받았다.

강연도 재미있었다. 사실 영상미도 음향도 없었다.

그저 회사 교육실에서 열린 평범한 강연이었다.

회사에 대한 내 태도가 달라졌기에, 그 강연이 재밌게 들린 것뿐이다.




나는 늘 회사를 내 ‘생활 기반’으로 여겼다.

일을 오래 할 생각이었고, 평생 무언가에 몸 담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왜 그때는 나에게 일을 주는 회사에 감사하지 않았을까.

내 돈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내 정의가 관철되는 조직도 아닌데, 왜 나의 불편함을 굳이 그렇게 드러냈을까.


아마, 내가 작았고, 그만큼 좁은 시선으로 세상을 본 것 같다.

내 잣대에 세상을 끼워 맞추고, 불편해하고, 그것이 옳은 태도라 여겼던 시절이다.


지금 와서 보면, 그 연예인은 나에게 너무 박한 대접을 받았다.

한때는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인데, 나는 그보다 한참 덜 유명한 지휘자에게 이렇게 잘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되씹기를 자주 할 것 같다.

조금씩 바뀌는 내 시선에, 과거의 일이 다시 새롭게 보일 것이다.

흑역사가 늘어나는 만큼, 내가 보는 세상도 조금씩 넓어지겠지.


생각이 바뀌면, 같은 것도 다르게 보인다.

그리고 가끔은, 그 다름이 나를 민망하게 만든다.

하지만 민망함은 괜찮다.

이제는, 그런 민망함이 자란다는 증거라는 걸 아니까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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