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숙성되어야 한다

기다림 없이 이룰 수 있는 진짜 관계는 없다

by 이언니

생각해보면,
나는 최고의 결실을 위해 인내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최근 4년,
인간관계 때문에 회사를 다니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철없는 말이지만, 사람들과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짜증났다.


처음부터 자유로운 조직 문화에 익숙했던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위계의 언어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나이만 들어버렸다.

그리고 30대 후반이 된 지금,
인간관계에 본격적으로 걸려 넘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건 결국, 사람 사이에서 버티는 일이니까.
이번엔 제대로 이해하고, 성숙해질 거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만족 지연’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지금 당장의 보상을 참을 수 있는 사람과
그걸 참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눈앞의 사탕을 먹지 않고 기다릴 수 있었던 아이들은
결국 더 큰 보상을 받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눈앞의 달콤함이라는 작은 만족을 얻고 끝난다는, 다들 아는 실험.


사탕을 참지 못했던 아이들이
통계적으로 가난하게 산다고 한다.


그 영상을 보며 나 자신이 자꾸 겹쳤다.


어릴 때 우리 집은 가난했다.
나는 열심히 살긴 했지만,
‘미래’를 기다릴 수 있는 집은 아니었다.

당장의 한 푼이 소중했고,
당장의 기회가 지나갈까 봐 조급했다.


그래서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지금의 이익을 미룬 적이 별로 없다.
“일단 먹고살아야 하니까”는 말이
나에겐 늘 충분한 이유였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예컨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도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서두른 적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넌 선택이 너무 빠르고 조급한 것 같아.”


나는 안다.
사회에 나와서는
“어릴 때 가난했다”는 말이
인내심 부족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걸.


그냥 나는 조급한 사람일 뿐이고,
누구도 나의 가난한 배경을 감안해주지 않는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능력 있고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걸
상대가 ‘알아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기다리지 않았다.

상대가 나를 이해할 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상대가 이해하는 방식을 먼저 읽고,
그 안에 맞춰 천천히 나를 설명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런 걸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왜 몰라주지?’라고만 생각했다.


결국 나에게는 인간관계에서도 ‘기다림’이 부족했던 것이다.


상대의 의도를 이해하기도 전에 서운해 했고,
상대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지도 않고 마음을 닫았다.

상대가 나를 이해하며 관계가 숙성하기를 기다린 적이 없다.




반복적인 인간관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는 사회생활을 계속하고 싶고,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고,
내가 가진 특별함을 제대로 인정받고 싶다.


그러려면,
이번엔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내가 아니라
상대가 준비될 시간을 기다리는 연습부터 시작하는 거다.


그리고 그 연습에는
상대가 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먼저 다가가고,
설명하고, 여유를 가지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지금까지 나는,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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