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일면
소설 제목이다.
아무리 봐도 나를 닮지 않는 자식을 보고서 결국은 닮은 곳을 찾은 것이 발가락이었다.
함께 하기 전에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하나하나가 "다름"에서 시작했지만 지지고 볶으며 살다 보면 한쪽으로 기울어져 같아지거나 그것도 아니면 짬뽕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하나가 편하다는 것 때문에 하나로 흡수 통합되어 가기도 한다.
문화라는 것은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동화되어진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으로 동화되면 좋지만 세상이 그렇게 녹록치 않다.
남존여비나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는 대부분 남자의 문화가 여자의 문화를 짓누른다.
어쩌면 강자의 문화가 남는다.
새벽에 잠이 깬다.
눈앞에 또 다른 내가 보인다.
아직도 잠에서 꿈을 꾸고 있는지 알았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잠을 잤기에 같이 사는 여자의 잠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잠에서 깨었을 때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같이 하면 애들이 커가는 줄도 모르지만 한참을 떨어져 있다가 보면 어느새 커버린 애들에 놀래듯이 오랜동안 보지 못했던 잠자는 모습에서 어느새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보인다.
생각지도 못한 닮음 속에 또 하나의 나를 보면서 잠이 달아난다.
힘으로 무력으로도 동화되지 않고 독립을 외치며 36년을 버틴 후손이건만 이제는 잠자는 모습까지도 같아져 버린 또 다른 나를 보고는 놀란 가슴에 잠을 못 이룬다.
부창부수가 이런 뜻은 아닌데 이제는 발가락만 닮지 않았다.
이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달라져 버리면 발가락만 닮아질텐데 나는 아직은 강자다.
강자만 살아 남든다.
내가 변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나를 닮아 온다.
잠이 더 안온다.
그래서 난 덜깬 잠꾼이다.
부족한 잠으로 오늘 하루도 졸음과 싸운다.
2023.02.03 덜깬잠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