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빈칸을 빈칸으로 남겨두면 안 되는 시대를 살았다.
채우는 것에 익숙하다.
깨진 독에도 물을 채워야 한다고 배웠다.
방학이 되면 하루 일정표를 짜야했다.
스물네 시간짜리 시간표에 빈칸은 남겨두면 죄가 되었다.
밥을 주는 시간은 엄마만 아는데 시간표 속에 밥 먹는 시간을 남자 마음대로 써넣는다.
숙제로 내는 일기에는 방학 내내 시간표대로 하지 않는 일을 써도 선생님은 아무 말도 안 하신다.
오히려 길게 쓰면 잘 썼다고 칭찬을 받았다.
매일 조금씩 다른 군대 생활은 어떻게 보면 꽉 짜인 학생 때보다 하루가 다양했다.
아마도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빡세다는 군대생활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비워 있는 것을 견뎌내지 못한다.
하얀 도와지에도 하얀색을 칠해야만 했던 시대를 살았다.
"여백의 미"는 그림의 떡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었다.
"편안함의 습격"과 "경험의 멸종"
고생을 사서 하란다.
돈도 없는데 고생을 사서라도 하란다.
잘 살고 오래 살려면 남이 좋다는 대로 하지 말란다.
남의 경험을 따르지 말란다.
남이 맛있다고 평점을 내린 것이 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남이 먹지 않은 것이 남자의 입맛에 더 맛을지도 모른단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 곳은 나중에 가고 남이 덜 간 곳을 가보란다.
그래야 남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단다.
무료해야 한다고도 한다.
쇼츠로 순간순간을 채우지 말란다.
그냥 비워두란다.
근데 명상을 하면서도 빈 공간에 소리로 채운다.
명상에 도움이 된다며 자연의 소리로 채운다.
비워진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두 가치 남은 담배갑을 보고 담배를 사러 가는 불안함이 없었으면 좋겠다.
핸드폰 충전선을 뺀다.
채움에 편안함을 느낀 남자는 비움에 편안함을 꿈꾼다.
그날이 오늘이면 좋겠다.
2025.10.24 덜깬잠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