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일상
8,90년대를 배경으로 한 TV드라마를 보면 좀 촌스럽다.
볶은 파마머리도 그렇고 밑단이 넓은 리바이스 청바지도 그렇다.
남자들은 장발을 한껏 휘날리며 폼을 잡기도 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서인지 공감이 되면서도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있다.
드라마 한 장면에 시선을 고정한다.
대단한 것 마냥 치킨을 들고 "아빠 힘내세요!"와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시며 집에 오시는 아버지!
그때는 그랬다.
아버지가 뭔가를 손에 들고 퇴근할 수 있는 날들이 많지 않았다.
월급날 이거나 혹은 가족 누군가의 기념일이라도 되어야 손에 뭔가가 들려있었다.
그런 날이면 보기 힘들었던 누나도, 집 어딘가에 있었던 동생이랑 형도 한 자리에 모였다.
집에서 가족이라고 부른 이들과 함께 과일을 먹어본 지가 꽤 된 거 같다.
여자는 언제부터인가 수박을 잘 사지 않았다.
냉장고 한 켠에 물러터져 버려지는 반이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생활에 바빠 함께 먹을 수 있는 과일보다는 혼자 먹어도 되는 것들을 산다.
늦가을 사과를 그렇게 먹었고 한겨울 귤을 그렇게 먹었다.
봄에 먹었던 신선한 딸기도 혼자 먹었고 먹다 남은 물러터진 딸기도 혼자 먹어치웠다.
냉장고에는 점점 혼자 먹어도 되는 과일들로 채워졌다.
그렇게 가족은 각자가 돼서 각자의 과일을 먹으며 살아간다.
남자는 언제부터인가부터 TV속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아파트 지하에서 차를 타고 지하로 돌아와 집으로 들어온다.
퇴근길에 냄새에 홀려 치킨을 살 수 있는 기회도 없고
후문 뒤편에 가끔 있던 순대나 튀김 트럭에 일부러 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버지처럼 월급날이라고 지갑 속 지폐 몇 장을 꺼내지도 못한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들놈에게 톡으로 몇 장일지도 모를 숫자를 입력하면 끝이다.
"고맙다"는 이모티콘을 받는 것으로 아버지 역할을 끝난다.
아버지의 역할을 핸드폰이 다한다.
아들놈이 카톡으로 메시지를 날렸다.
"가는 길에 수박 사갈게!"
남자는 뜨악하다.
"어! 아직 내 몫인데......?"
놈 덕분에 세 명이 다인 가족이 모였 앉았다.
수박 반 통을 오랜동안 먹었고 그래도 남은 반 통을 냉장고에 넣었다.
내일은 불금이고 아들놈과 약속한 치킨 데이다.
아버지로 사는 치킨은 여전히 핸드폰이 대신하지만 후식으로 먹을 물어 터져 버리지 않아도 될 수박 반통도 있다.
올여름, 여자는 수박을 살 것이다.
시원한 여름을 시작한다.
2025.05.30 덜깬잠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