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25년 추석 인사

by 덜깬잠꾼

남자가 태어난다.

가장 먼저 들었던 소리는 어쩌면 "엄마"였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빠"라기보다는 "아버지"였을 것이다.

남자의 시대에는 "아빠"라는 호칭은 TV 속의 서울 애들이 쓰는 낮 간지러운 호칭이었다.


커가면서 남자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생겼다.

남자를 때리기도 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형"이라고 불렀고

엄마 대신 돌봐주기도 하고 놀아주기도 하는 사람은 "누나"라고 불렀다.

말을 하고 나선 식사 시간이 되면 진지 드시라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러 가는 것은 남자의 몫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남자가 심부름을 시킬 수 있는 "남동생"이 생겼고

인형보다도 더 예쁜 새침데기 "여동생"도 있었다.


절이면 먼 동네 사시는 고모가 고모부와 사촌형을 데리고 오셨다.

엄마를 따라 간 외갓집에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렸고 외삼촌과 외숙모와 맛난 점심을 먹기도 했다.

어쩌다 가끔은 외갓집에서 이모와 이모부를 만나 용돈을 챙기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명절의 끝자락에서는 동네에 사시는 지금은 거의 쓰지도 않는 각양각색의 호칭의 어르신들에게 인사도 드렸다.

남자와는 무슨 관계인지도 몰랐지만 어른들은 남자에게 당숙이시라고 하면서 인사를 시킨다.

당질이 있고 종질도 있었다.

평소에는 그냥 옆집 아저씨였는데 명절이면 집성촌이라 한집 건너면 다 친척으로 변한다.

어린 학교 후배가 족보상 할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세상이 달라졌다.

부모님은 식을 생각한다고 피곤해할까 봐 오지 말라며 맘에도 없는 말씀을 하신다.

남자는 속도 없이 그래도 되냐며 되묻는다.

이제 부모님이 오지 말라고 하기도 전에 남자는 애들 시험을 핑계 삼아 가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남자의 애들은 엄마나 아빠 말고 따로 부를 수 있는 호칭이 별로 없다.

삼촌은 그나마 가까이 산다.

고모도 이모도 그닥 멀지 않지만 먹고살기 바빠 볼 기회가 많지 않다.

사촌 형이나 동생은 얼굴보기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더 어렵다.

오랫동안 못 불러본 호칭들은 이제 불러보고 싶어도 부를 수가 없다.

남자의 애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부를 수가 없다.

남자의 윗분들은 그냥 족보 위에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좋아하는 호칭도 있다.

형수가 생겨 처음에 "도련님"이라고 할 때 부잣집 아들이 된 것 마냥 좋았다.

아직도 불편한 호칭이 있다.

처제의 남편은 나이가 남자보다 많다.

말을 해야 하는데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처남의 집사람도 제대로 불러본 적이 없다.

처남댁 아들들 얼굴은 가물가물해서 어디서 만나더라도 남남이지 싶다.


긴 명절이다.

자식 놈에게 용가리 똥뼈라며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이라고 큰 소리를 쳤다.

오랫동안 불러보지 못한 우리의 소리를 아들놈에게도 들려줘야겠다.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임을 증명하기에 좋은 날들이 많이 있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떠나려 했는데 남자를 할아버지라 부르는 놈이 쳐들어온단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아버님"이라고 부를 예비 며느리 밥이나 사줘야겠다.

이리저리 우리의 소리는 찾을 수 있는 넉넉한 한가위를 시작해 본다.

2025.10.03 덜깬잠꾼

작가의 이전글[고도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