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벼르다.
이슈를 이슈로 덮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더 큰 이슈로 앞선 이슈를 덮어버린다.
그러고 나면 앞선 이슈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었던 일이 된다.
막장이 한때 유행했었는데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지난달에 120점 정도의 막장이 나왔으면 이번 달에는 200 정도는 돼야 명함을 내민다.
어지간해서는 막장인지도 모른다.
신라면은 불닭 복음면 앞에서 그냥 일반 라면일 뿐이다.
어제의 강한 태풍은 오늘의 토네이도에 한방에 하늬바람이 되었다.
남미의 어느 나라 대통령이 자기 나라에서 남의 나라 군인들에게 힘없이 잡혀 갔다.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인데 잡배를 잡아가듯 너무나 자연스럽다.
자다가 봉창 뚫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아침 뉴스에 버젓이 나온다.
옆 나라에서는 세계의 정의는 사라졌노라며 침략이니 내정간섭이니 떠든다.
잡아간 나라의 감옥에 갇힌 지 시간이 흘렀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어진다.
침략을 지시한 사람은 그렇게 도발해도 되는 것처럼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해도 된다고 당연시한다.
먼 중동에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 나라 최고지도자는 폭탄에 맞아 죽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전쟁이 시작되었고 잡혀간 남미 대통령은 더 이상 이슈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는 전쟁마저도 아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막장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에게 전쟁마저도 무뎌져버렸다.
중동 어딘가에서 최고지도자가 폭사당했는데 그리고 초등학생이 죽어나는데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무뎌져 버렸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기에 더 그렇다.
세계의 정의가 나에게 큰 영향이 없었다.
내가 뭐라고 떠들든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조금의 불편을 참고 침묵한다.
그러면 안 되는 것들이 그래도 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무통증 환자도 아닌데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어려서 부모님은 항상 날을 벼려놔야 한다고 하셨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아야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말씀에 따라 날을 벼려 놨는데 정작 쓸 데가 없어 칼에 녹이나고 무뎌졌다.
선생님은 세상 살아가는데 날을 세우지 말라고 하셨다.
날 세우고 살면 적이 많아지고 어울리지 못해 힘들다고 하셨다.
말씀에 따라 날을 죽이고 살았더니 줏대도 없는 놈이 되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다.
무뎌진 감각은 솥뚜껑 위에 삼겹살을 올려놓을 정도로 대범해졌고
자라를 보고 용봉탕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신다.
전쟁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전쟁의 대의명분을 따지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지 뉴스에 나오지도 않는다.
어떤 무기가 성능이 좋은지 그리고 가성비가 좋은 무기가 무엇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고 올라간 기름 값에 화를 낸다.
침략을 당한 국민의 편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온통 승자의 편에 서있다.
힘의 논리가 정의나 연민의 논리보다 강하다.
날 선 감각은 애꿎은 주유소 기름값에 또 꽂혔다.
날을 다시 벼려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숫돌이 없다.
계속되는 막장에 정의를 외치는 날도, 연민의 날도 모두 무뎌져버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중증 무통증 환자다.
TV를 끄고
신문을 접고
막장으로 무뎌진 감각을 다시 살려야 겠다.
식감을 살리는 쑥국에 두룹도 좋겠다.
2026.04.03 덜깬잠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