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아는 선배분이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스스로 할 수도 없는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마. 아니면 너무 피곤해!"
어느 스님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내가 신경 쓰는 것만큼 타인은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요"
책에서 이런 이야기도 읽었다.
자기에 대해서 표현해 보라고 하면
서양 사람들은 본인 자신이 중심이 되어 설명을 하는데
동양 사람들은 관계 중심으로 타인이 바라본 시각으로 자신을 설명한다고 한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그렇게 정의된 나는 진짜 나일까?
남이 만들어 놓은 껍데기로 사느니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타인에 의해 좋게 그려지길 기대하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힘들다.
타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하기보단 스스로 기준에 행복을 찾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성인군자도 아닌데 굳이 남의 비위 맞추어가며 힘든 가시밭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운칠기삼이라고 할 정도로 노력만으로만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없는 운을 쌍끌이로 끌어 모아가며 살아가기에는 현실은 너무 팍팍하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해 볼 수 있는 것만 있어도 만족하며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타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신경 쓸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것이 진리였는데 너무 남만 보고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익숙해져 버린 동물원 우리를 벋어나 야수의 본능을 깨워야 한다.
사육사가 던져 주는 먹이를 기다리지 말고 야생의 날 것을 찾아 나설 때다.
잃어버린 야수의 발톱을 시험해 볼 때다.
가끔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살아 보는 것도 좋다.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루를 살아 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오늘 하루는 그렇게 살아 봐도 되지 않을까?
이기적인 내가 되어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찾아 나선다.
근데 내가 회를 좋아했던가?
2022. 10. 20. 덜깬잠꾼
[그리고 시간이 또 흘렀다]
여전히 동물원에 살고 있고
이제는 야생으로 돌아갈 용기도 없다.
더 솔직하자면 야생에서 먹이를 찾을 체력도 남아있지 않다.
때가 되면 나오는 먹거리에 불만이 있어도 먹을 만 함에 만족한다.
허기를 채우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기에 안주할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준다.
이제는 온실 속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관상용도 못 되는 시들어버린 잡초로 남아 있다.
그렇게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어린 왕자의 늑대가 담을 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포도가 셔서 담을 넘지 않은거다.
나는 태생적으로 회는 좋아하지 않았다.
이 마저도 안주하는 이유가 되어준다.
2026.03.27 덜깬잠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