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 볼리비아의 방송사

100일간의 무일푼 세계일주

by JAKE

2024년 12월 23일 월요일


어제는 일기 쓰는 걸 깜빡했어. 매일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말야.

사실상 매일 일기를 쓰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제처럼 회사에서 송년회를 하는 날에는 하루종일 일기는 커녕

내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는 것 같아서.


어제 회사 사람들과 마지막 식사를 했어.

회식 장소는 '내부자들'같은 영화에서나 보던 대청마루 룸으로 나눠져 있는 해산물 식당이었어.

전복과 문어가 가득 들어 있는 해물탕이랑 붉다 못해 새빨간 오리불고기가 참 맛있었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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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무거울 것 같았는데, 오히려 더 나은 회사에 갈 기회라는 말들로

잘 포장해서 나를 보내주셨어.


공과 사의 구분이 철저해서 가끔은 무섭던 부서장님도,

항상 나를 잘 챙겨주시던 과장님도,

거의 친구처럼 믿고 의지하던 선후임들도

'회사'라는 명목하에 거리를 두고 지내왔는데 뭔가 정든 가족을 떠나보내는 느낌이야.


아, 떠나는 건 나긴 하지만.



힌, 너가 서운해할지 모르지만 한국에는 너보다 더 친한 친구들이 몇 있어.

그 중 하나가 은서거든?


은서는 대학교 2학년 때 만나서 아직도 절친으로 남아 있는 친구야.

하얗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친구인데, 항상 '마당발'이라는 별명을 가진 애였어.


지금은 본인 회사 볼리비아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인데,

여기서도 못하는 스페인어 어떻게든 해가면서 사람들을 두루두루 사귀고 있는 모양인가봐.


아참,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 간만에 고향땅인 인천으로 돌아가던 중, KTX 안에서 은서랑 통화를 했는데

볼리비아 방송국에서 4개월 간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한국인을 구한다고 하더라구.


4개월 간 무엇을 촬영하는지 궁금했는데, '100일 무일푼 세계일주' 라는 프로그램으로

10명의 도전자 중에서 100일 안에 가장 빠르게 세계일주를 성공하는 사람을 뽑는 대회형 방송이라고 하더라.


은서 말로는, 요즘 한국 문화가 너무 유명해져서 홍보용으로 한국인 남성을 한 명 구하고 있대.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진로를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니까, 은서가 선뜻 물어보더라고.

방송국 관계자가 본인이랑 친해서 원한다면 적극 추천해줄 수 있다고 말했어.


왜 마당발인줄 알 것 같지?

A에게서 얻은 정보를 가장 필요로 하는 B에게 전하는 은서의 능력에 새삼 놀라워.


나는 흥미로워서 좋은 제안인 것 같다고 말하긴 했지만,

볼리비아라는 생소한 나라의 방송사에서 촬영한다는 것도 조금 의심스럽고

100일간 무일푼으로 어떻게 세계를 여행한다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


무엇보다 나는 해외여행이라고는 일본에 가본 게 전부야.

그것도 8년 전에 말야.

물론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긴 하지만..

무일푼으로 세계일주를 할 내공이 있는 사람인 것 같진 않아.



우선은 또 은서한테 소식 들려오면 바로 일기 쓸 게.


안녕 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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