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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Feb 02. 2022

[한달도전1] 휴대폰-레볼루션

나는 모피어스다.

그제 7시간 58분, 어제는 4시간 18분...


새해 들어 지난 첫 이틀간 일일 휴대폰 사용시간이다. 잠자는 시간을 뺀 하루 17시간 중 무려 1/2과 1/4을 휴대폰에 썼다. 물론, 그제나 어제가 좀 심했지만 보통의 일상이다.


시간의 분량만이 문제가 아니다. 휴대폰은 어떤 악조건(?)에서도 강력한 멀티 태스킹을 제공한다. 가족들과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때에도, 친구들과 식사나 술을 즐기는 때에도, 따분한 TV 시청이나 전철에 피곤한 몸을 싣고 이동하는 중에도, 심지어 배변에 각고의 힘을 쏟는 그곳 안에서까지, 어느 곳 어느 때를 가리지 않는다. 휴대폰은 많은 그것들과 함께 하지만, 그것들의 대체재도 보완재도 심지어 독립재도 아니다. 무언가에 생각, 느낌, 마음 그리고 동작마저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 그것은 시간의 분량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중국에 하두족(下頭族, 시아토우주)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휴대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인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는 현대인을 빗댄 말이다. '하두(下頭)'의 원래 뜻이 아래, 밑, 하급(부) 또는 하인 따위인데, 그 뜻에 의거해서 어느새 우리는 휴대폰의 하인이 되었다. 휴대폰을 위해, 매일같이 전기 에너지를 충전하고, 튼튼한 보호 필름과 형형색색의 커버를 씌우고 교체하고, 어디에서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는 나의 데이터와 사진들을 끊임없이 퍼올린다.


영화 '매트릭스' 나오는, 인공자궁  갇혀 식물처럼 재배되면서 의식 일체를 A.I. 에 지배당하는, 충격적인 인간상을 떠올린다. 매트릭스 세상에서 인간은 그저 거대한 시스템에 에너지 공급원으로 존재한다. 그들의 살아간다고 느끼는 삶은, 매트릭스가 인간의 두뇌에 심어 놓은 가상의 프로그램이  놓은 환상일 뿐이다. 어쩌면, 휴대폰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거대한 시스템이 우리에게 걸어 놓은 탯줄 일지 모른다.


2022년 1월 3일 오전 10시 45분, 나는 이미 1시간 30분 동안 휴대폰을 봤다.


휴대폰 사용을 한 달 동안 줄여 보기로 결심했다. 무언가에 유도당하는 종속된 삶, 자발적인 사고가 멈춘 주인 없이 순삭 된 시간, 줄어든 신체활동과 기울어진 머리 무게에 고통받는 척추, 가족 또는 이웃들과 소통의 단절 또는 불성실, 이런 해악들을 걱정한다면 한번 정도 해 볼만한 시도가 아닌가!


호기심도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상생활의 불편과 심심함은 당연할 테고, 심한 경우에 심리불안 같은 금단현상까지 겪을 수 있다 하니.... 궁금하지 않은가!


휴대폰이 없이 살던 그 시절의 기억은 이미 백 년 전만큼이나 까마득하다.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도대체 떠오르지가 않는다. 인간의 의식 일체를 생성, 저장, 삭제, 교체하면서 인간을 지배하는 매트릭스 생각이 나서 일순 두려움이 몰려온다. 항전의 때가 되었다.


"그대는 모피어스, 이제 레볼루션이다."

목표는 일평균 1시간 반! 불필요한 내용은 보이지 않게 하고, 필요한 내용은 조회빈도를 낮추는 게 기본전략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가급적 잊어버리되 혹시 모르니 나중에 찾아볼 수만 있게 한다. 후자에 대해서는 급한 것은 바로 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모아서 한 번에 몰아 보게 한다. 이건 전술이다. 몇 가지 조치들을 취했다.

 

1. 필요한 앱만 알림 설정 & 나머지 해제

2. 가끔 보고 싶은 앱은 '카운트 배지' 남김

3. 알림, 잠금상태 보기와 미리보기 옵션 설정

4. 개별 앱 안에 있는, 관심 없는 채널 및 서비스 차단

5. 페이스북, 트윗 같은 즉답 불요 SNS는 오전과 오후 하루 한두 번 열람

6. 카카오톡, 잠금상태 미리보기 이용해서 필요한 경우만 열어 보기

7. 수기 메모장 소지! 생각, 의문 사항을 적어 놓았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검색

8. 휴대폰, 파우치 백에 넣고 다니기(주머니보다는 손이 덜 닿으니...)


2022년 1월 3일, 레볼루션 하루 3시간 40분 ; 메모하기 그리고 기억하기

인사동에 저녁 모임이 있다. 미로 같은 인사동 골목 깊숙이 자리한 한정식집인데, 찾아가기가 영 만만하지 않다.  네*버 길찾기서비스에서 보니, 대중교통으로 1시간 7분이 걸린다. 이런 경우에, 보통은 처음부터 경로를 꼼꼼히 보지는 않는다. 대충 보고 출발해서, 교통편이 바뀌거나 길이 헷갈리면 그때마다 휴대폰을 열어 확인한다. 초행지인 경우에는 휴대폰을 보면서 도착지까지 걸어갈 때도 있다. 이렇게 하면 대충 10~20분 정도는 휴대폰을 본다.

[레볼루션] 네*버 길찾기에 조회한 경로에서 중요한 경로 포인트들을 메모장에 수기로 적었다. 버스노선 번호, 전철 노선, 환승역, 골목 모퉁이 가게 이름을 적으니 5개이다. '적는다'는 건 아주 효율 좋은 기억강화 수단이다. 도착지까지 휴대폰을 한 번도 열어 보지 않고, 메모장도 볼 필요가 없었다. 사실 우리는 공부도, 일도 평생 적어 왔다. 20분을 줄였다. 길찾기 보려다가 덩달아 다른 앱 보던 건, 별도로 절약된다.


2022년 1월 4일, 레볼루션 이틀 2시간 9분 ; 사전 없이 중문 책 읽기

버스 기다리는 정거장에서 10분, 타고 이동하는 35분! 집을 나설 때, 휴대폰을 아예 손가방 깊숙(?)이 넣었다. 대신 책을 꺼내 들었다. 중문 수필집인데 문학책이라 어려운 한자가 수두룩하다. 그전 같으면, 휴대폰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 그런데, 번역문을 이용해 모르는 한자 뜻을 역으로 추정하면 대략 그 의미가 들어온다. 당최 모를 한자들도 가끔 있다. 그러면, 무시하고 그냥 읽는다. 그런대로 읽을만하다.

[레볼루션] 책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문장의 연결, 단락의 구성이 보다 잘 보인다. 문맥 짚어내기가 쉬워지고, 중문 어조와 작가의 흥취가 느껴진다. 또 20분을 줄였다.


2022년 1월 6일, 레볼루션 사흘 1시간 41분 ; 침대 멀리 하기

하루 종일 방콕 했다. 그런데, 침대에 한 번도 눕지 못했다. 누우면 슬그머니 휴대폰에 손이 가고, 낮잠이라도 들어 깨어나면 게으름으로 다시 휴대폰에 손이 간다. 책 읽다가 허리가 뻐근하면, 빈둥빈둥하다 정 할 일 없으면, 점심 먹고 배불러 졸리면, 제법 침대 신세를 진다. 밀린 책 읽느라, 쌓인 생각들 폭풍 글 쓰느라, 증권계좌 정리하느라, 오늘은 그럴 틈이 없었다. 처음으로 2시간 아래로 떨어졌다.

[레볼루션] 침대는 긴장을 풀게 한다. 긴장이 사라질 때 따라오는 것이 습관이다. 그러니, 침대와 휴대폰은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다.  이번에도 20분 줄였다. 그래도, 밤잠은 침대에서 자자!


2022년 1월 8일, 레볼루션 닷새 2시간 52분 ; 그놈의 술이...

친구들과 남산 트래킹하고 나서 장충동에서 원조족발에 거나하게 막걸리로 일합! 이합은 동대문 근처에서 생맥주, 그렇게 무려 5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방역기준에 따라 4명만 모인 탓에, 참석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에게 실황중계하느라 카톡 수다가 바빴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손가방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여기저기 확인하느라 친구들과 카톡 또 카톡, 친구들의 참견과 놀림, 거기에 대응하느라 또 카톡, 카톡, 카톡...

[레볼루션] 술이 문제다. 술 마실 때는 휴대폰을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기다. 술은 못 끊어도 휴대폰은 기필코 끊으리라! 손가방은 결국 찾지 못했다. 다음부터는 분실예방 차원으로 큰 걸 들고 다닐란다. 물경 1시간이나 늘었다.


2022년 1월 11일, 레볼루션 엿새 3시간 10분 ; 정치 이야기

대전 내려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3명이 12시부터 점심 먹고, 카페에서 커피, 저녁 식사, 그간 밀린 이야기들이 식당 마감 9시까지 잔치였다. 중년 수다, 남자도 만만치 않다. 친구 간에도 정치, 종교, 자식 학교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40년 지기 절친이라서, 그런 상식은 무시하고 이 꽃 저 꽃 안 가린 채 이야기가 만발했다. 특히, 한창 열띤 대선 시국인지라 즉시성이 필요해서 기사 검색이 많았다. 돌아오는 상경 KTX에서, 승무원한테 객차 내에서 대화자제라는 한 소리 듣고서 옆자리 친구와는 묵언수행, 저녁 반주로 후끈해진 취기에 책은 눈에 안 들어오고... 또 검색, 검색, 검색!  

[레볼루션] 친구를 끊을 수도, 대화를 끊을 수도, 술을 끊을 수도 없다. 제 아무리 모피어스라 해도 친구 많고 술 좋아하면 매트릭스 못 이긴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너무 했다. 3시간을 넘었다. 오늘 마신 소주가 '처음처럼'이다.


2022년 1월 18일, 레볼루션 열닷새 5시간 27분 ; 브런치 작가 등록

브런치가 바빠졌다. 그동안 읽기만 하던 브런치에 쓰기가 더해 지니까 도대체가 감당이 안 된다. 글 써서 올리랴, 구독과 라이킷 체크하랴, 읽어 주신 작가님들 글 열독 하랴!

[레볼루션] 실패!ㅠㅠㅠ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날짜가 지나면서 작가등록 흥분도 가라앉아 조회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한달도전, 첫 판부터 성공하면, 해피엔딩 그거 너무 뻔한 거 아닌가???!!!


p.s. 한달도전 : 현직일 때 못 하고 미뤄 둔 '할 거리'들을 '하나씩 꺼내서 한 달씩 Clear!' 하는 나 홀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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