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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Mar 30. 2023

[한자썰81] 志, 선비처럼 살다.

士에서 止를 회복하다.

志(뜻 지) :  士(선비 사) + 心(마음 심)


금문 志(뜻 지)는 士(선비 사)가 아닌 내디딘 발(止)과 심장(心)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무언가를 향해 용기를 내서 첫 발을 내딛도록 만드는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내적 욕구, 그것이 志이다.( 【 표 1 】 1, 2 )


그런데, 이 금문 志의 止(그칠 지)가 예서에서 士(선비 사)로 바뀌게 된다. 이를 두고서 서체 변화 과정에서 생긴 단순한 와전이라고 설명을 한다. 士가 志에서 별로 유의할 의미요소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엄연히 보이는 士자를 무시하고 정작 해석은 과거를 끌어내서 止나 之(止의 변형)에서 그 뜻을 찾는다.


【 표 1 】 志의 자형변천

그렇지만, 士(선비 사)만을 따로 떼내어 그 유래와 변천을 살펴본다면 꼭 그렇게 볼 일만이 아니다. 士는 금문에서 형을 집행하는 관리인 형관(刑官) 또는 그가 허리에 차고 다니는 도끼를 가리켰다. BC 2,000년 무렵 오제(五帝) 적부터 이미 그래 왔다 하니 참으로 장구하다. 법이 주로 형법에 한정되어 있던 고대에, 애초 도끼였던 士가 관권에 대한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였음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 【 표 2 】 1, 2)

【 표 2 】 士의 자형변천

진의 통일과 한대를 거치면서 중국은 관료체계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는다. 이를 서구세계와 비교하면 자그마치 수백 년을 앞선다. 변방 또는 대내 제국 간의 국가급 전쟁을 끊임없이 치러야 하는 열국들은 정규군을 상비해야만 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관료체계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관직 진출을 것을 높게 평가하는 사회문화적 경향이 일찍부터 생겨 난다. 관원은 그 되기가 천리길만큼 어려웠지만 부와 신분을 보장해 주는 선망의 직업이 된다. 금문 志의 止가 士로 바뀐 시기가 마침 이 즈음이다. 게다가 士가 관직에 입문하면 거쳐야 하는 초급하위관리를 가리켰으니, 시작의 상징인 첫 발과는 그 의미가 상통한다. 止가 士로 대체된 것은 이와 같은 시대상황이 반영된 결과이지 싶다.


止는 과정이고 보편적이다. 목적지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을 표현한 것이니 과정이다. 갈 곳이 어딘지를 특정하지 않으니 목표 지향적이지 않다. 반면에 士는 결과이고 제한적이다. 관료제 사회에서 士는 특정한 계층이나 신분의 상징이 되었고 도달해야 할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귀중한 것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소수에게 독점되어 가면서 그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志의 자형변천에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노력보다 보다는 성과’를 보다 중시하는 사회의식의 변화가 담겨 있다.


사족, 우리는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가 일을 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 사업을 하는가 사업을 하기 위해서 이익을 얻는가?


어느 동네에 유명한 맛집이 있었다. 테이블이 열댓 개 남짓인 크지도 작지도 않은 식당이었다.


한 노신사가 식사를 마치고 물었다.


“주인장, 손님들이 늘 이렇게 장사진을 치는데 가게를 좀 늘려야 하지 않겠소? “


“어르신, 제가 그 오시는 손님들 다 받으면 근처 가게들은 어떻게 하라구요! 같이 살아야죠. 저는 지금 정도면 식구들 먹고살고 아이들 공부하는데 모자라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제 음식을 손님들이 맛있게 잘 먹었다고 칭찬해 주시는 게 제일 기쁘거든요. 가게가 커지면 사람을 더 써야 하고 훨씬 바빠지겠지요. 그러면 제가 제 음식을 만들 수가 없어져요. 그럼 어디 이 맛이 나겠어요? 그 음식 맛도 맛이지만 즐거운 맛이 덜해질 것 같아요. “


관료로 살겠다는 마음, 나라와 임금에게 충성하고 백성을 보살피며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 선비로서 살겠다는 마음, 사욕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갈고닦아 덕을 쌓고 그 힘으로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며 살겠다는 뜻! 그랬으면 참 좋겠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처음이든 중간이든 마무리이든, 천리길 가는 첫걸음처럼 설레게 살았으면 좋겠다.  타락한 士에서 止를 회복하기 말이다. 哈哈。


주) 대문그림은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구리 료헤이, 『우동 한 그릇』의 삽화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작가의 주장과 달리 실화도 창작도 아니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심지어 작가는 사기행각, 학력위조, 불륜 등 각종 추문에 휩싸인 악덕 인물이 되어 버린다. 구리 료헤이가 이 소설을 쓴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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