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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Feb 03. 2023

[한자썰80] 午, 절굿공이에서 망아지까지!

그리고 해시계...?

午(낮 오) : ?(-) + 十(열 십)


갑골문 午(낮 오)는 절굿공이의 상형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니 그렇게 보일 뿐이지 비슷한 모양을 한 다른 물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그것이 어째서 그러냐라고 누가 그러면 갑골 모양만으로 변을 삼기가 난감하다. 그만큼 그 모양이 뚜렷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杵(공이 저) 자를 보면 그렇다.  ( 【 표 】 1 )


원래 절굿공이를 가리키던 午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새로운 뜻을 갖게 된다. 농경의 확산과 함께 절구와 절굿공이가 사람들 생활 속에 일반화되면서 절굿공이가 각종 말들에 비유로 쓰인. 그리고, 그 비유들이 차차 午의 새로운 뜻으로 굳어지게 된다.


【 표 】午의 자형변천(www.baidu.com)

그렇게 생긴 새로운 뜻들이, 거스르다, 어기다, 어수선하다, 엇갈리다 그리고 꿰뚫다 등이다. 절구질할 때 생기는 충격과 압력, 마찰, 소리, 섞임, 분쇄, 노동, 협동 등등으로 인해 연상되는 것들에서 파생한 것들이다. 절굿공이가 워낙 일상에서 흔히 쓰이던 물건이니 비유로 쓰이는 그 빈도는 갈수록 잦아지고 범위도 넓어진다.


"너는 애비 뜻 거스르기가 부러진 공이 절구질하듯 하는구나!"

"글쎄, 그 댁 도령은 어수선하기가 절구공이에 찧인 보리겨 날리 듯한다네요. 에고 귀한 우리 아씨 어쩌신다요! ㅠㅠ"

"미친 황소 날뛰는 뒷발질에 절굿공이 얻어맞은 냥 그 두꺼운 문짝이 휑 뚫어져 버렸다지 뭐냐!"


곡물은 껍질을 벗겨야 먹을 수가 있고 향신료는 부수거나 갈면 풍미가 더욱 퍼질 뿐 아니라 재료에 속속들이 섞여 들어 미식을 한층 돋운다. 농업 생산성이 증대되면서 먹거리가 풍부해지고 식문화가 발달하니, 각종 식재료들을 잘게 부수거나 가루를 내어 가공하는 수요도 빠르게 증가한다. 근대 이전까지 줄곧 절구와 절굿공이는 각양각색의 크기와 모양으로 수천 년 동안 그런 작업을 도맡아 왔다.


그렇다면, 낮과 다섯은?


"여보게들 서두르세나. 해가 중천에 떴네. 절굿공이 그늘 짧아진 것 좀 안 보이나!"

"하나(一),둘(二),셋(三),넷(四)~~~ 절굿공이(午=五 (wǔ))!"  "하하, 이 사람 싱겁기는.." 주 1)


여기도 절굿공이 저기도 절굿공이, 오만 곳에 붙여 써대니 이 사람 저 사람 헷갈리지 않는 이가 없다. 부득불 절굿공이에만 따로 가려 쓰도록, 午는 남기되 木를 더한 杵를 만들게 된다. 그 차에 아예 발음도 '오'에서 '저'라 - 중국 발음은 [wǔ](우)에서 [chǔ](추))로 - 새롭게 만들어 붙인다. 허니, 갑골문 午는 절굿공이(杵)였음에 틀림이 없다.


사족, 지금은 午가 주로 '낮'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그 낮을 반으로 나누어서 오전(午前), 오후(午後), 상오(上午), 하오(下午)라 하고 한가운데는 정오(正午)라 한다.

【그림】앙부일구 (仰釜日晷) : 조선시대 해시계

午, 곧 절굿공이가 '낮'으로 통하게 된 유래가 흥미롭다. 절구에 공이를 꽂아 두면 공이 그림자는 하루종일 절구 아가리와 확을 타고 쉬임 없이 움직인다. 서쪽으로 길게 누웠다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해가 중천에 뜨면 제일 바짝 섰다가, 그다음부터 다시 동쪽으로 누워가다가 가장 길 때쯤에 노을과 함께 사라진다.


그렇게 절구공이 그림자가 운동하는 동안이 낮이고, 절구 아가리와 확이 그림자의 길이와 위치로 나타내 주는 것이 시간이다. 절구공이는 해시계의 원형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주 2)


옛날에는 하루를 십이 등분해서 시간을 정했다. 그 각각의 이름이 (), (), (), (), (), (), (), (), (), (), (), ()이다. ()가 이 십이지지 중 일곱 번째인 것은 낮의 중앙인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가 열두 시간대 중에 일곱 번째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도교(道教) 신앙의 영향을 받아 이 시간 구간에 동물들을 일대일로 대응시키게 된다. 그 일곱 번째 동물이 말이다. 어느덧 午는 말(馬)을 상징하는 글자가 되었다. 맙소사, 어쩌다 절굿공이가 망아지까지 되었을꼬! 


"김 아무개야, 요사이 잘 지내시나? 사흘 지나 절구공이 그늘 젤로 짧아질 때 그때 그 주막에서 뜨신 국밥에 전 쪼가리 몇개  놓고 구수한 탁배기나 한나절 걸쳐보세!" 呵呵。


주) 1. 해음(楷音) : 발음이 비슷한 다른 글자를 빌어서 그 글자의 이미지를 연상시켜 뜻을 비트는 언어유희를 가리킨다. 예를 들자면, '520'을 '우얼링(五二零)'으로 읽는다. '사랑해!'는 유아이니(我爱你)다. 그래서 '520'은 사랑해라는 뜻으로 장난을 친다. 춘절이면 대문에 붉은 福(복 복) 자를 뒤집어 붙여 놓는다. 복이 뒤집혔으니 倒福(도복)이 되는데, 倒(뒤집힐 도)는 到(다다를 도)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뒤집어 붙인 복자는 '복이 온다!'는 뜻이 된다. 중국 사람들의 한자 말장난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2. 확 : 절구 안 쪽에 움푹 파인 부분을 순우리말로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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