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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Feb 20. 2022

[한자썰19] 借, 빚 권하는 사회

가짜 그리고 임시

借(빌릴 차)는 사람(人)과 양념해서 말린 고기(臘(섣달 랍/납) → 腊(포 석) → 昔(옛 석))를 결합한 글자다. 고대에 고기는 흔히 먹기 어려운 귀한 음식이었고, 부패하기가 쉬우니 양껏 비축해 둘 수가 없다. 제사나 잔치, 손님 접대에 준비한 고기가 떨어지면 이웃집에서 빌려야 할 밖에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이웃집인들 갑자기 고기가 있을 턱이 없으니, 두었다가 먹으려고 곳간에 보관해 둔 말린 고기라도 아쉬운 대로 얻어 쓰게 된다. 큰 일에는 음식 수량을 못 맞추기가 십상이니, '말린 고기 빌려 쓰기'도 꽤나 다반사였으리라! 그러니, 빌리다는 뜻으로 글자를 借라 했겠다. 주 1)


좀 다른 해석으로, 昔이 鵲(까치 작)을 생략한 글자라는 의견이 있다. 까치집이 비면 자기 집을 짓지 않는 비둘기가 대신 들어와 산다는데, 이를 구거작소(鳩居鵲巢)라고 한다. 이렇게 까치가 자기 집에 비둘기가 들어와 대신 살게 하는 것처럼, 사람(人)이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는 것을 借라는 불렀다는 설이 그것이다.


借(빌릴 차)와 새김말이 같은 다른 글자로, 貸(빌릴 대)와 貣(빌릴 특)이 있다. 이 글자들에서는 고기가 사라지고 조개(貝)가 등장한다. 옛날에 조개가 돈으로도 쓰였다 하니, 이 즈음에 화폐경제가 태동했음을 가늠해 볼 수가 있다. 금문에서 발견되는 貣는 창(戈)을 겨누면서 재물(貝)을 빼앗아 간다는 뜻이다. 여기에 사람(人)을 더한 貸는 ‘부탁해서 빌린다’는 뜻으로, 소전에서부터 보인다. 금문에서 소전으로 바뀌시기인 통일 중국 진에 이르면, 위력이나 무기를 앞세워 빌리는 약탈경제가 신청과 승낙의 대등한 관계 하에서 빌리는 계약경제로 사회가 발전하였음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주 2)


,  그리고 貸가, 물물교환에서 화폐교환, 약탈경제에서 계약경제로 넘어가는, 고대경제의 진화를 설명해 주는 문화적 화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빌릴 ) 자는 도태되어  이상 쓰이지 않는다. 경제행위에 약탈이 사라진 결과다.



假(거짓 가)도 원래는 '빌리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금문을 보면 두 사람이 산비탈 아래에서 무언가를 손으로 주고받는 모습(叚)(금문)에 사람(人)을 더한 글자(소전)인데, ‘사람끼리 빌리다’를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글자이다. 그럼에도, 借, 貣, 貸처럼 빌리는 목적물이나 그 형식까지 포함된 된 좀 더 구체적인 글자가 등장하게 되자, 假는 ‘빌리다’의 의미가 점차 약해지고, 지금은 주로 ‘가짜’ 또는 ‘임시’의 뜻으로만 쓰인다. 빌려주는 것은 진짜로 주는 게 아니니 '가짜'다. 그러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돌려받아야 하기 때문에 '임시'다. 주 3)


貸나 借를 이용해서 손에 넣은 것들을 우리는 내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그 법률적인 형식이 소유이든 점유이든, 실제로는 ‘가짜’와 ‘임시’라는 것을 명심하는 것! 그것은 빚 권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신용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살아 살 수 있는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假(거짓 가)에는 원래 借(빌릴 차)의 뜻이 있다는 것을 통해서 배운다.


주) 1. 臘(섣달 랍/납), 腊(포 석), 昔(옛 석)는 모두 말린 고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2월 비가 적고 추울 때 말린 고기가 맛이 좋다고 해서 섣달을 뜻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臘月 또는 腊月은 음력 섣달, 12월을 가리킨다.

2. 借와 貸를 지금은 빌려받다와 빌려주다로 다르게 쓰고 있지만, 원래는 借도 빌려주다의 뜻이었다. 위에서 본 까치의 입장이 그렇기 때문이다. <설문자해(說文字解)>에서는 착오로 변경되었다 설명하고 있다.

3. 假는 원래 빌려받다, 즉 비둘기의 입장이였다. 지금은 잘 쓰이지는 않지만 假가 빌려주다는 의미로 쓰인다. 借와 假는 그 원래 의미가 어쩐 일인지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반대가 되었다.


p.s. 다음 한자썰은 개인 사정으로 한동안 쉽니다. 좀 더 공부해서 돌아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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