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내가 아무 생각도 안 나도록 힘들었던 그 순간, 사람들이 응원한다면서 무슨 말들을 했었는데 그냥 힘들었던 기억만 남았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상대방의 아픔까지 껴안고 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용기와 희망, 응원하는 단어들이 많지만, 자주 사용하는 말 중 용기와 의욕이 솟아나도록 북돋워 주는 의미가 있는 '힘내'라는 단어가 있다. 난 그 단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상대방의 아픔을 가볍게 치부하는 것 같아 항상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그것과 바꿀만한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난 여전히 인사치레로 지나가듯이 ‘언제 밥 한번 먹자’와 같은 무의미한 뜻이 포함된 듯한 ‘힘내’를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오래전 죽을 만큼 힘들었던 나에게 하듯이 응원이 필요한 주변 사람들에게 불끈 쥔 두 주먹을 흔들면서 ‘우리 힘내자!’라고 말해주기 위해서이다. 그때 내가 힘을 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그들도 살아낼 것 같아서이다.
30년 전 경북 포항에서 같은 통로에 산다는 인연으로 절친이 된 친구가 직장암 2기 진단을 받았단다. 전국이 아니 전 세계가 ‘슈퍼 블루문’을 보겠다고 들떠 있던 그날이다. 낯선 서울 큰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었던 친구는 ‘달님께 꼭 빌어줘’라면서 자신의 병을 문자로 알려왔다. 그 문자를 보고 그냥 울었다. 작년 7월 정년퇴직 후 여행만 다니겠다고 하던 친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재취업을 했었다. 힘이 닿는 데까지 몇 년 더 일하고 그 후엔 실컷 여행만 다니겠다고 했었는데…. 포항에서 진단받고 서울까지 가는 시간 동안 내내 얼마나 무서웠을까? 초조하고 두려운 마음을 부여잡고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었을 친구를 생각하면 또 뜨거운 뭔가가 불쑥 올라온다.
포항을 떠나온 후 주로 내가 포항에 갔었다. 밤을 새워가며 서로 분하고 서러웠던 감정들을 토해내면서 마치 소녀처럼 깔깔대며 놀았었다. 난 친구 부탁대로 날씨 탓에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뜬 ‘슈퍼 블루문’을 올려다보면서 두 손 꼭 모은 채 ‘지금처럼 앞으로도 쭉 철없이 웃고 떠들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빌었다.
백로가 지난 후 아침저녁 제법 찬 기운이 돈다. 주말 행사처럼 치러지는 집 안 청소하며 바라본 하늘은 얄밉도록 푸르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을 친구에게 하늘 사진을 보냈다. 통화라도 하고 싶은데 응급수술 후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말하던 모습이 생각나 그냥 사진만 보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앞둔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가슴이 먹먹해져서이다.
집안 곳곳을 누비는 로봇청소기를 바라보면서 30대 이후를 같이했던 친구가 내 삶에 로봇청소기 같았다고 생각했다. 포항을 다녀오면 쌓이고 쌓였던 나쁜 감정 덩어리들이 사라지고,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즐겁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청소를 마치고 난 용기를 내어 ‘힘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을 믿으면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힘든 치료를 앞둔 주말 아침이다. 밥은 먹었니? 밥심이 필요한 때이니 꼭 먹자. 오늘은 하늘이 높고 푸르다. 바람도 제법 선선하고. 방사선 치료가 마무리되는 11월 말쯤 볼 수 있다고 하니, 그때까지 힘내!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