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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Mar 12. 2024

해방된 자유인입니다.

날마다 카페 나들이 중^^

그동안 출근시간에 늦을까 봐 우리 집 모든 시계를 10분 정도 빠르게 해 놨다. 덕분에 10분 빠른 생활을 했다. 물론 朝三暮四, 도긴개긴이지만 10분 빠른 시계를 보며 난 마음이 편안했다. 퇴임 후 시계 시간을 10분 뒤로 돌려 맞췄다. 출근, 교 시간에 목매고 사는 직장인, 학생이 있는 집이면 아침 시간 5분이 저녁시간 30분 맞먹는다는 걸 알 거다. 아침에 머리를 말리거나 얼굴에 선크림을 두드리며 시계를 가자미눈으로 흘끔거리는 바쁜 생활을 마감한 난 빨리 감기를 멈췄다. 우리 집 시계가 이제야 제시간을 찾았다. 별로 넓지 않은 집 벽에 시계가 6개나 있다. 이방 저 방 부엌 화장실 곳곳에 시계가 있다. 내 눈이 닿는 곳마다 시계가 있어야 할 만큼 초조하고 바빴던 시간들이었다.


2월 23일 퇴임식 후 2월 말까진 지나간 방학 때처럼 보냈다. 한 걸음 떨어져 남을 보듯 팔짱 끼고 차가운 눈으로 날 관찰했다. 지난 학기를 되짚어보며 잘한 것과 못한 것을 기록했다. 새 학기를 준비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드디어 3월이다. 이런! 내가 퇴임한 걸 깜박했다. 개학과 무관한 일상의 시작인데 새 학기를 준비하다니. 오래간만에 위아래 옆집까지 들리도록 아주 큰 소리로 웃었다.


3월 4일은 거의 모든 학교가 개학하는 날이다. 난 개학 전날이면 방학 숙제를 덜한 학생처럼 마음이 불안해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이제 그럴 이유가 없는 퇴직자지만 간 밤 잠을 설친 탓에 아침 8시 조금 넘어 일어났다. 바쁠 이유가 없으니 느긋하게 라디오를 틀었다. 출근 후 이미 업무를 시작했을 시간에 음악을 듣다니 기분이 묘했다.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애청자가 보내온 사연을 읽는다.

"32년 근무 후 퇴직했습니다. 오늘 드디어 백수 첫날입니다. 기분이 묘하네요."   

나와 같은 퇴직자다. 반가운 마음에 라디오 소리를 더 크게 올린다.

"백수라뇨! 해방된 자유인입니다. 축하드리고 애쓰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사연 신청자 신청곡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흘러나온다.

      

'해방된 자유인'이라니 기분 좋은 단어다.

'사랑의 인사' 속 바이올린 소리가 미세먼지로 뒤덮인 하늘을 푸르게 만드는 마술을 부린다. 푸른 하늘과 반짝이는 빛 속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광고 속 남자 모습도 보인다. 오랜 전 광고 속 장면을 보듯 눈을 감고 있는데 수업 시작종 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힌다. 시계를 보니 1교시 시작종이 울리는 9시다. '' 하며 난 표현하기 힘든 미소를 지었다.   오늘 아침 몸은 집에 두고 학교로 출근했나 보다. '습관이 무섭네'라 중얼거리며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렇게 지난주 일주일 동안 난 아침이면 카페로 출근했다. 수업 시작과 끝 소리가 들리는 집을 피해 계획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자유인답게 즐기려고 나섰다. 운전을 하며 달리다  슴속에서 날갯짓하는 자유가 머물 곳에 멈췄다. 산수유가 손짓하는 구례다. 문 닫은 주유소 옆에 엿가락처럼 길게 자리한 카페로 들어갔다. 맛있는 빵 냄새가 날 더 이끌었다. 커피와 빵을 주문하고서야 이미 소문난 유명한 곳이라는 걸 알았다. 난 1 급수인 섬진강을  바라보며 추운 겨우내 나뭇가지에 웅크리고 숨어있다 빼꼼히 고개 내밀기 시작한 봄꽃을 만났다. 자유인이 된 날 축하해 준다며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로 고개 내민 꽃들이 팔랑거린다. 나 둘 피기 시작한 꽃이 무더기가 될 다음 주엔 꽃 축제가 시작된다는 현수막도 날 향해 두 손 흔들고 있다.   

난 겨울 가고 봄이 오면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꽃을 피우는 나무를 바라보며『내 이름은 도도』책을 펼쳤다. 난징시 작가협회 부주석인 '선푸위' 작가는 이기적인 현대 문명에 의해 쉽게 잊히고 버림받은 것들에 관심이 많아 '멸종 위기 동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책으로 썼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완전히 죽어버린, 멸종된' 생물들이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이름도 생소한 것들이다. '봄이면 꽃이 피듯 멸종된 생물들이 지금껏 우리와 함께 했다면 우리 삶은 더 여유롭지 않았을까'라는 어설픈 생각도 했다.

5월에 호주 뉴질랜드 여행을 계획 중인 난 순결한 사랑을 믿는 뉴질랜드에 살던 '후이아(불혹 주머니찌르레기)' 이야기에 꽂혔다.


뉴질랜드에 살던 후이아는 수수한 깃털과 나긋나긋 부드러운 노랫소리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수컷의 부리는 딱따구리의 부리를 닮아서 나무껍질을 쪼아낼 수 있고, 암컷의 가늘고 긴 부리는 구부러져서 나무 틈새에 숨어 수컷이 잡지 못하는 작은 벌레를 쪼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후이아는 부부가 늘 함께 다니며 힘을 합쳐 먹이를 잡았다. 그들의 아름다운 생김새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 사이의 돈독한 사랑 때문인지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그들을 신성한 동물로 여겼다. 성대한 의식을 치를 때면 부족의 추장이 후이아를 신에게 바치며 제사를 지냈다. 마오리족과 후이아는 오랜 세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1840년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이 섬에 상륙했을 때까지 약 900년간 마오리족의 제사 때문에 후이아의 수가 줄진 않았다. 영국 에드워드 7세가 국왕으로 즉위하고 아들 요크공이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마오리 원주민은 그를 존경하고 환영하는 의미로 후이아의 아름다운 깃털을 요크공의 모자에 꽂아주었다. 그것이 유럽 전역에 크게 유행하면서 1907년 12월 이후 후이아를 목격한 신뢰할 만한 사례는 보고 되지 않고 있다. 영국 침략에 긴 창과 이빨로 저항했던 마오리족 또한 서양 음식과 생활방식에 의해 앞으로 100년을 못 버티고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1914년 마지막 여행비둘기가 죽다- 중에서


넓디넓은 카페 주차장으로 관광버스가 들어온다. 남쪽으로 봄꽃 구경을 온듯한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린다. 나는 음악과 사람들 소리가 섞여 버린 곳을 나왔다. 관광버스 뒤편 도로를 접한 곳엔 간이의자가 펼쳐진다. 중년인 남녀가 둘러앉아 소주와 음식을 나눠 먹는다. 뒷정리는 제대로 하고 갈까라는 걱정에 한 번 더 힐끔 쳐다봤다. 축제가 시작되는 다음 주엔 더 많은 사람들이 올 텐데 쓰레기는 어떻게 정리할까? 축제 마무리 후 뉴스에서 봤던 산처럼 쌓인 쓰레기 동산 생각에 자꾸 그들에게 눈길이 갔다.

나 또한 야외에선 1회 용품을 사용한다. 편안함과 이기적인 삶에 익숙해져 잊혀가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 도로공사로 편안해진 길 위를 운전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또 다른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 건지 생각이 깊어져 마음이 소란 소란했다. 집으로 돌아온 '해방된 자유인'인 난 환경보호는 우리 집부터라는 생각에 집안 구석구석을 헤집었다. 내 이름은 도도』덕분에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들에게 나는 자유를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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