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라고^^
난 책을 읽다 마음에 들면 주변 지인들에게 그 책을 선물하곤 했다. 받은 사람들이 읽든지 말든지. 그들도 나처럼 감동을 받든 지 말든지. 그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딸아이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을 마지막으로 지인이 아닌 친구들에게만 책을 보낸다. 책을 받은 친구들에게 난 '독후감 보낼 것!'이라고 문자도 보낸다. 친구들은 '완독'과 '감동'으로 독후감을 대신하며 책 선물에 고마움을 전해온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학기 초 '가정환경조사서'와 '주민등록등본'을 의무적으로 제출했다. 딸아이는 '父 死亡'을 숨기고 싶어 했다. 그런 아이를 위해 난 '가정환경조사서'에 남편 이름과 직업을 적어 제출했다. 3월 학교는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바쁘다. 틈틈이 쉬는 시간에 활자를 보며 힐링할 거라는 마음으로 책과 함께 이미 사망한 남편을 있는 척 한 이유를 적어 담임선생님께 소포로 보냈다.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힘든 부탁도 아닌 거라 딸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었다.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는 담임선생님께 이메일로 사연을 전했다. 딸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父 死亡'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
서른여섯 인(앗차! 나이계산이 바뀌었지. 서른다섯) 딸의 초등학교 5학년 운동회하던 날이었다. 난 근무하던 학교에서 곱지 않은 눈치를 받아가며(관리자들은 보건선생님 부재를 싫어한다.) 조퇴 후 딸아이 운동회에 참여했다. 처음 뵌 담임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자리를 잡았다. 딸과 내가 그들 무리(담임선생님, 딸아이 학급 엄마들) 등뒤에 있는 줄 몰랐던 담임선생님이 비꼬는 목소리로
"세상에! 3월에 바빠 죽겠는데 조금 전 인사하던 엄마가 책을 보냈더라고. 책갈피에서 편지가 나오는데 난 깜짝 놀랐어. 세상에 편지라니. 봉투도 아니고…"
난 딸아이 손을 잡고 살며시 자리를 이동했다. 우린 서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분식집에서 사간 김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목메게 먹던 김밥생각에 울컥한다. 활자가 좋아 선물하던 책은 눈물 젖은 종이가 돼버렸다. 그땐 봉투가 오고 가던 시절이라곤 하지만, 같은 직종에 있던 난 미치도록 부끄럽다. 지금은 80을 넘었을 그 선생님 대신 반성하고 사과한다.
브런치스토리엔 여러 분의 작가님이 글을 쓰고 계신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지면서 엄지 척해지는 글이 많다. 사람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글을 읽다 보면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난 브런치스토리와 친구가 된 지 5개월이 되었다. 내 글을 읽고 격려와 응원을 해 주시는 작가님 중 '딸그림아빠'님이 있다. 마음 아픈 딸이 그린 그림에 가슴 울리는 글을 쓰는 작가님이시다.
브런치스토리에서 천재작가님 글을 읽으면 그의 필명이 이해가 되었다. 그는 감사하게도 내 글을 응원해주기도 했다.
작가에게 30년 된 친구가 '잘 지내?'라고 안부를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작가는 "응. '잘 지낸다'의 기준치를 낮게 하면 잘 지내"라고 대답했다. 작가의 대답이 과식으로 힘들어하던 내게 소화제가 되었다. 난 시원하게 트림을 했다. 작가는 세상에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 아프지만 오래 살고 싶다 한다. 로비에 성당이 있는 건물에 근무하면서 1인 다역을 하고 있는 작가는 주체하지 못하도록 넘치는 사랑을 글로 썼다. 잠자는 사람을 깨울까 봐 조근조근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일, 억울했던 일, 가슴 아팠던 일 등을 기억에서 지우고 그 자리를 비워두면 자연스럽게 좋은 기억들이 그 공간을 채운다고. 작가 말에 나도 부지런히 머릿속을 비운다. 곧 좋은 일들이 빈 공간을 가득 채울 거라는 생각에 엉덩이가 흔들거린다. 작가는 직업인, 환자. 남편, 아버지, 자식의 모습을 달콤한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은 단어로 표현했다. 그 달콤 함안에 숨겨놓은 아픔과 고통을 '보물찾기'하듯이 찾아낸 난 살짝 눈이 빨개졌다.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우리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잘 지내고 계시나요?'라고.
평범함이 가장 어렵다고들 한다. 난 날마다 평범한 날들만 지속되길 바란다.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글을 쓰고 있을 모든 작가님들과 친구들에게 '잘 계시죠?'라는 인사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