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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Mar 01. 2024

친구들아 안녕?

3.1절이다.

"이 천방지축 가시내들아! 살아봐라. 인생은 산(山)이다. 오르고 올라 정상에 도달하면 누구나 내려와야 살아. 지금 너흰 올라가는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수험생. 공부해야지. 싸움은! 가시내들이 악을 쓰면서 그렇게 싸우면 시집은 가겠니?  좋은 일은 좋아서, 슬픈 일은 슬퍼서 나누면 커지고 줄어드는데. 사는 동안 나누고 살 친구와 싸우면 되니? 제발 싸우지 말고 서로 챙기면서 공부해!"

중3 때 우리 반 교실은 교무실 옆이었다. 담임선생님 출산으로 노총각 과학선생님이 임시 담임이었다. 어느 날 순둥이 친구와 평소 말이 거친 친구 둘이 머리를 짓 뜯으면서 싸웠다. 우린 그 둘이 다칠까 봐 책상을 한쪽으로 밀었고, 반장은 교무실로 달려갔다. 순둥이 친구가 콧물눈물 흘리며 소리 지르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왜 싸웠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순둥이 그 친구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평소 조용하던 친구는 소리 지르며 두 팔을 휘둘렀던 그날을 기억할까? 그때 둘은 학생과 선생님 중재로 억지로 화해는 했는데. 그 후 다시 친구가 되었을까? 둘은 임시담임 선생님 말처럼 부지런히 오르고 올랐던 산(山)을 내려오는 중일까?


3.1절이라 태극기 게양을 했다. 그날 함성을 지르던 그분들이 계셔 난 편안하게 앉아있다.

오늘부터 다시 추위가 온다더니 바람이 엄청 분다. 바람 따라 태극기가 휘날리는 창 밖을 보다 문득 싸우던 우리 반 친구가 생각났다. 유관순열사와 비슷한 나이인 15~6세여서 그런 것 같다. 교무실 옆 교실이라 더 소란스러웠을 그날. 임시담임 선생님은 얼마나 난감했을까? 1970년대 교실은 자유롭지 않았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통제하던 시절이었다. 여학생 60명이 모여있는 교실을 떠올리면 끔찍하다. 그 교실에서 도시락까지 먹었으니. 출산 휴가 마치고 돌아온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책상 위에 무릎 끓고 앉혔다. 당신이 없는 사이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한 응징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빗자루 막대로 치마를 걷어올린 우리들 허벅지를 힘껏 내리쳤다. 우린 그날 이후 졸업식 때까지 조용한 반이 되어버렸다. 졸업식 이후 담임선생님을 다시 만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서 아예 지우려 했지만, 오늘까지도 담임선생님 이름 석자가 생생하게 박혀있다.


선생님이 된 난 중3 때 담임선생님, 임시담임선생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모범반'이 있던 시절이라 치열했을 거다.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서 누구보다 당신 반을 잘 이끌고 싶었을 거다. 60명이나 되는 철없는 여중생들 지도하느라 힘도 들었을 거고. 그래도 치마까지 걷어올리고 허벅지에 했던 '매질'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다가올 8월에 퇴직할 친구와 2년 전 명예퇴직을 한 친구 셋이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셋이서 마치 중학생이 된 기분으로 떠들고 놀았다. 우린 어떤 선생님이었을까? 학생들에겐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될까라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3.1절을 앞두고 학생들과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기도 했었는데. 우리 셋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각자의 시간을 돌아봤다.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에 엄마로, 학생들의 선생님으로, 동료로. 열정 하나로 살아왔던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오르기만 했으니 조심조심 잘 내려가자 했다. 봄을 알리는 첫 소식인 '홍매화'처럼 오늘을 보내면 더 화사하고 따뜻한 내일이 기다리니 건강관리도 잘하자는 약속도 했다.

여행에 함께한 친구와 다른 친구들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활짝 핀 '홍매화'기운을 던져주고 싶다. 항암치료 중인 친구, 간성혼수에 빠진 아버지 간병 중인 친구,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힘들다는 자영업자 친구들, 얼마 전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친구에게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 힘을 포함한 기운을 던진다.

"오늘처럼 바람 부는 날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우리를 반겨줄 거야. 우리 한걸음 한걸음 잘 걸으면서 내일을 기다려볼래.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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