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곱하기 삼입니다.
책 '서른 살이 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를 읽고.
8개월 된 딸아이 오른쪽 눈두덩이가 갑자기 부어올랐다. 이삿날이 다가와 다락에 있던 묵은 것들을 정리한 다음날이었다. 다락에서 나온 벌레에게 물렸거나, 단순한 두드러기쯤으로 여겼다. 동네 소아과에서 항히스타민계 주사와 약을 먹으면 금세 가라앉았다. 3일 치 약이 끝나니 아이 눈두덩이가 다시 부어올랐다. 동네 소아과에서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세균성 염증으로 부었다며 페니실린계 항생제를 하루 한번 주사, 3번 투약하란다. 난 일주일 동안 아이와 병원 외래를 다녔다. 주사와 약 부작용으로 아이는 잘 먹지 않고 설사만 했다. 아이 증상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병원에선 'CT'를 찍자 했다. 조영제 투여를 위해 아이에게 혈관주사를 놔야 하는데. 몇 번 실패했다. 잘 울지 않던 아이가 목이 터져라 울었다. 그때 폭풍이 몰아치듯 나에게 서늘한 느낌이 왔다. 예사롭지 않은 병이구나.
포항에서 급하게 서울 대학병원으로 날았다. 딸아인 '조직구증식 증후군(랑게르한스세포조직구증식증)'이라는 병명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딸 낳으면 비행기를 실컷 탄다고 하더니 그땐 난 포항에서 서울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늘을 날았다. 입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힘들지 않았다. 워낙 순둥이였던 딸 덕분이다. 아이들은 항암제 용량이 적어 잘 견디며 비교적 예후가 좋은 부위이니 안심하라는 담당과장님 말씀에 나와 남편은 헤벌 쩍 웃었다. 치료 과정 중 골수검사가 힘들었다. 아이를 먼저 재운 후 두꺼운 바늘로 골수를 빼야 하는데 한 번에 성공한 인턴선생님이 드물었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바늘을 삽입하면 자던 아이가 깨어 병원 천장이 깨지도록 울었다. 난 검사실 복도에서 넋 나간 미친 여자모습으로 아이 울음소리만 듣고 있을 뿐이고. 그날도 그런 모습으로 복도를 서성거렸다. 인턴 선생님의 거듭된 실패에 호출받고 달려온 주치의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따뜻한 한마디를 던졌다.
"아무리 간호사 출신 엄마지만 울어도 괜찮아요. 어머니. 참지 말고 우세요. 입술 너무 깨물지 마시고요"
난 딸 울음이 들리지 않게 귀를 막고 싶던 손을 입술로 가져가 흐르는 피를 쓱 닦았다.
딸아인 5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고 추후 관찰을 하다 이젠 까마득히 잊고 살고 있다. 결혼도 했고.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를 쓴 천재작가님의 추천으로 브론치스토리 작가인
이정연 님의 『서른 살이 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를 읽었다.
눈물 콧물로 화장지 한통을 썼다. 그녀의 아픔과 보호자였던 나, 환자였던 딸아이 아픔이 버무려져 더 울었다. 그녀는 온 세상이 노랑 빨강 파랑으로 뒤덮인 봄날 같던 25살 때 '말기신부전'을 진단받았다. 11년을 이어온 투병생활을 그녀 특유의 재잘거림으로 써 내려간 책이다. 투병 중 '고혈압, 돌발성 난청, 이명, 녹내장, 고혈압성 망막박리 등' 그녀가 추가로 주문하지 않은 것들이 그녀를 덮쳤다. '아픈 건 간결하지가 않으니까' 라며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쓸어 담았다. 투석을 위해 그녀 왼팔에 혈관수술을 하고 난 후 그녀의 외침에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라며 나는 엉엉 목놓아 울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저는 12 병동 112호 환자 이정연입니다. 병실로 보내주세요. 엉엉엉엉엉. 너무 아파요. 엉엉엉엉엉."
난 내 상처만 아픈 줄 알았는데 그녀의 고통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안절부절이다. 그녀가 투병하는 동안 코로나까지 주먹질하며 나타났다. 만성질환자에게 더 위협적인 코로나로부터 환자를 보호하려는 병원의 노력과 환자 분들 노고에 늦었지만 인사드린다. 상상 불가능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아픔은 꽁꽁 숨긴 채 '나는 글로 당신을 위한 이불을 짓겠어요.'라며 우리들에게 싱긋 미소를 던지기도 한다.
참새처럼 오늘도 재잘거리는 그녀를 중심으로 친구 진진이, 이젠 먼 길 떠난 설이 형인 남자친구, 든든한 남동생, 귀엽고 여린 엄마, 브런치스토리 가족들, 병원 의료진들, 침대에서 머리를 맞대고 만나는 투석환자들이 활짝 웃으며 둥글게 둥글게 모여있다. 그녀는 그들에게 "세상은 생각보다 친절해"라며 환하게 웃는다.
여전히 투병 중인 그녀가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곁에 있으니 안심하란다. 그녀가 늘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고도 한다.
난 힘든 투병생활 중에도 괜찮은 척, 씩씩한 척하는 그녀에게 말을 건다.
"정연님 아플 땐 그냥 소리소리 지르세요. 정연님 곁에는 우리들이 있으니깐요^^"
인연이 맞닿으면 상처투성인 그녀의 왼팔을 따뜻한 내 손으로 주물러주며 꿀물이 줄줄 흐르는 호떡을 둘이 신나게 먹으리라 속다짐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