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을 인정하면서.
오후 햇살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고 있는데 그이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린다. 난 반가운 마음에 베란다 창을 열고 아파트 놀이터 근처 공터에 세워진 작은 트럭을 내려다봤다. 코로나19 이후 거의 3년 만에 싱싱한 과일과 채소를 싣고 그가 온 거다. 난 반가운 마음에 지갑을 들고 트럭으로 향했다.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오늘 딸기가 아주 싱싱합니다. 어서어서 오셔서 맛들 보십시오. 늦으시면 전 다른 곳으로 갑니다. 오늘 달걀도 크고 좋습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운전석에서 녹음된 목소리만 들린다. 난 짐칸에서 서로 자기를 봐달라며 뽐내고 있는 각종 채소들과 과일 쪽을 돌아봤다. 거기에도 트럭 사장인 젊은 남자가 없다. 딸기, 오이, 당근을 사고 싶던 난 물건들을 자세히 보기 위해 트럭 가까이 다가갔다. 트럭 건너편에서 걸어오던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사장이 바뀌었소? 목소리는 젊은 남자 사장이 맞는데.”
“아닙니다. 저도 과일 사러 왔어요.”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분께 대답했다.
트럭 가까이 온 그분은 날 보더니 알은체했다.
“혹시 자기 나 모르겠어. 나 권 선생. 우리 연수 때 짝꿍이었는데."
“아!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몰라봤습니다. 살이 너무 빠지셨네요.”
권 선생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몇 년 전 여름방학 중 받았던 연수 2주 동안 내 짝꿍이었다.
“자기 여기 살아? 난 7년 전에 명퇴하고 이곳으로 이사 왔어. 자기는 몇 동이야?”
권 선생님은 내 손을 잡아 흔들면서 쉬지 않고 말했다. 선생님 물음에 답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트럭을 향해 뛰어왔다.
“아이고, 많이 기다리셨죠. 6동에 배달 갔다가 할머니가 놔주질 않아 늦었습니다.”
“할머니? 사장님 할머니가 이곳에 사시나 봐요.” 내가 사장님께 물었다.
“아뇨. 혼자 사시는 분인데. 달걀 한 판 하고 오이를 배달시키더니 제 손을 잡고 놔주질 않더라고요. 오늘 노인정도 쉬는 날이라 적적하셨나 봐요. 서울 사는 자식 이야기까지 듣다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트럭 사장님은 권 선생님과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을 비닐봉지에 담아주며 대포 같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했다.
“여기는 새 아파트인데도 혼자 사시는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분들 집에 배달 가면 거의 30분 정도는 잡혀있다가 오거든요. 외로워서 그러니 싶어서 그냥 말 들어주다 와요.”
트럭 사장님의 계속되는 말에 권 선생님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자기 바빠? 나랑 우리 집 가서 차 한잔하고 가면 안 돼?.”
난 딸기, 오이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권 선생님을 따라갔다. 내가 사는 8동과 같은 정남향인 권 선생님 댁도 오후 햇살이 부엌까지 들어와 집안이 환했다. 난 어느 집이든 집안이 환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식탁에 날 앉힌 권 선생님은 방금 사 온 딸기를 씻어 내게 주며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린다.
“선생님, 전기포트는 없어요? 전 포트가 편하던데.”
“응. 전기포트를 태워 먹었어.” 얼굴에 살이 하나도 없는 볼이 쏙 들어간 모습의 권 선생님은 일회용 커피를 컵에 부으면서 날 바라봤다.
“어쩌다 그러셨어요? 다치진 않으셨고요.” 놀라 묻는 내게 권 선생님은 명퇴 후 이야기를 해줬다.
두 살 터울인 남편 퇴직에 맞춰 명퇴했단다. 자녀 둘 다 결혼했으니, 남편과 둘이 미루었던 취미생활을 하며 살려고. 6년 동안 동호회, 동창회, 부부 동반 모임, 복지관 등을 다니며 젊은이 못지않게 놀았단다. 특히 탁구 동호회에선 부부가 전국 대회 선수로 참가도 했고. 날마다 신혼처럼 남편과 손잡고 다녀 주변 지인들 부러움을 받기도 하면서. 남편 칠십을 앞둔 지난해 봄 벚꽃이 떨어지던 날까지 그렇게 살았단다.
작년 4월 바람에 벚꽃이 휘날리던 날 사고였단다. 저녁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단다. 그날 낮에 둘이 휘날리는 벚꽃길을 걸으며 바람에 날리는 꽃비를 실컷 맞으며 내년에 또 오자 약속했는데. 칠십 생일 며칠 앞두고 떠나셨단다.
지난주 화요일이 1주년 기일이었단다. 남편 사망 후 1년 동안 입·퇴원을 반복하다 보니 살이 다 빠져버린 거고. 기일 다음 날 전기포트에 물을 넣지도 않고 끓이다 전기포트를 태워 먹었단다. 힘없는 노인이 되어 물건 하나 드는 것도 쉽지 않고. 지금도 제일 견디기 힘든 건 남편이 떠난 거란다.
내게 이야기하며 내년에 칠십이라는 권 선생님은 하염없이 울었다. 난 살이 빠져 손대면 부스러질 것 같은 선생님을 안아드렸다. 우는 권 선생님께 서른여섯에 혼자된 내 이야긴 차마 하지 못했다. 난 둘이었다 혼자가 된 후 깊은 슬픔 속에 빠져있는 선생님을 위로할 말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저녁까지 먹고 가라는 선생님과 다음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행정안전부 주민 등록 인구 통계를 보면 3월 기준 전국의 1인 세대 수가 약 1천2만 명 정도라 한다. 우리나라 10세대 중 4세대 이상이 혼자 사는데, 특히 60대 비율이 18.5%로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많다고 한다. 60대인 내 주변도 혼자 사는 집이 더러 있다. 혼자다 보니 먹는 것도 부실하고 말 벗이 없어 외로움에 찌든 사람도 있다. 난 30년 가까이 혼자 살면서 조금은 단단해졌지만, 늙어가는 길목에 서 있는 지금 건강문제부터 하나 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있다.
난 권 선생님 집을 나와 아파트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놀이터 옆에 자리한 커다란 붉은 동백꽃나무 아래 떨어진 붉은 잎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동백꽃은 꽃이 귀한 겨울에 꽃을 피워 우리 눈을 행복하게 해주는 꽃이다. 활짝 피었다가 바닥에 떨어진 붉은 잎들이 마치 늙어가는 내 모습 같아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