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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장의 ‘캐즘’?

테슬라, BYD, 현대기차를 통해 본 혁신의 본질

by 지역이음이

생산라인의 멈춤. 혁신의 전환점에서 다시 묻다


'전기차 캐즘' 속 현대차, 아이오닉5·코나 생산 라인 또 멈춘다.(25.05.20)

https://www.yonhapnewstv.co.kr/news/AKR20250520104439373


최근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생산라인 일부가 중단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이오닉5와 코나 EV 같은 전략 모델들의 생산이 일시적으로나마 멈췄다는 사실은 단순한 수요 조절 차원을 넘어, 전기차 시장의 구조적 전환과 연결된 더 큰 시사점을 갖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많은 언론은 ‘캐즘(chasm)’이라는 개념을 인용합니다.
기술 수용 생애주기에서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에서 초기 다수자(Early Majority)로 넘어가는 과정의 단절. 제프리 무어가 『Crossing the Chasm』(1991)에서 제시한 이 개념은 분명 오늘날 많은 혁신 제품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핵심 이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과연 지금의 EV 시장 상황을 단지 ‘캐즘’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할 수 있을까?”


시장마다 다른 확산의 속도와 구조


전기차의 확산은 결코 전 세계적으로 동시적이지 않습니다.
각국의 정책, 기후, 인프라, 에너지 가격, 소비자 심리 등이 결합되며 전혀 다른 시장 궤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캐즘을 돌파한 상태입니다. BYD와 같은 현지 기업이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충전 인프라는 물론 배터리 원료까지 수직 통합한 공급망 전략이 강력한 성장 동력입니다.


유럽은 환경규제와 탄소중립 정책의 강력한 압박 속에 초기다수자 시장으로의 전환을 거의 마무리해 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매우 분할된 구조입니다. 서부, 특히 캘리포니아와 같은 지역은 EV 보급률이 매우 높지만, 중부와 동부는 낮은 가솔린 가격과 추운 기후, 인프라 부족으로 확산이 제한적입니다.


한국 및 동남아시아는 아직 초기 확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특히 한국은 가격과 충전 인프라 문제로 인해 수요 확대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BYD와 테슬라, 혁신의 두 축


전기차 시장을 이끄는 두 거대한 축, BYD와 테슬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BYD는 전형적인 저가형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전략을 따릅니다.
배터리 소재 채굴부터 완성차 조립까지 철저한 수직통합으로 제조비용을 극단적으로 낮췄고, 가격경쟁력을 기반으로 중국 및 동남아 시장에서 폭발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아키텍처 혁신(architectural innovation)과 독자적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 그리고 제조 공정 혁신을 통해 프리미엄 시장을 장악하면서 점진적으로 초기다수자 시장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완전 자율주행(FSD)과 충전 인프라 네트워크는 다른 기업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킬러 콘텐츠’입니다.

전기차 파괴적 혁신.jpg 전기차 시장의 파괴적 혁신. 메인 시장에서의 테슬라와 BYD의 격돌(Chatgpt로 자체 제작)


레거시 기업, 갈림길에 서다


기존 완성차 기업들, 이른바 ‘레거시 OEM’들은 이제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프리미엄 집중: 루시드, 리비안처럼 고성능 고가 모델 중심

범용 저가형 확대: 과거 도요타·현대식 대중화 전략

니치마켓 특화: 상용차, 택배용 EV 등 틈새시장 중심


현대기아차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우려하는 지점은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의 지속적인 저조입니다.
글로벌 주요 자동차 기업 중에서도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이 낮은 편이며, 엔지니어 인력의 사기와 조직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내부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EV 시장의 중심은 이미 이동 중이다


우리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 중심의 시장 논리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전기차 시장의 중심은 이미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BYD는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공격적인 확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 및 생산기지를 확보하고 있습니다(인도네시아 제외 동남아시아 대부분 국가 1위). 현대차가 인도네시아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이 시장 역시 머지않아 BYD의 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국, 혁신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EV 시장은 여전히 혁신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기술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시장을 바라보고, 어떤 전략을 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전략에서 시작됩니다.


덧붙이며

개인적으로는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조금만 더 지속되기를 바라는 감성도 있지만, 시장은 언제나 냉정하고 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흐름을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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