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그날, 드라마는 계속되고 있었다

현재 : 익숙해져야 했던 그날의 감정

by 지역이음이

2016년 7월 5일, 울산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부산도 굉음과 함께 아파트 전체가 흔들렸고, 당시 임신 중이던 아내와 함께 놀라서 계단으로 대피했습니다. 혹시 모를 대규모 지진에 대비해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통신망마저 마비되어 전쟁이 발생한 것은 아닌지 두려웠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귀가 후 지상파 방송을 확인했을 때, 드라마가 정상적으로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지역에 대한 수도권의 시선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그때가 첫 번째였고, 지금이 두 번째입니다.


1. 서울로 떠나는 학생들을 보내며


매 학기 졸업식 시즌이 되면 비슷한 대화를 나눕니다. "교수님, 서울에서 일하게 됐어요." 기쁜 소식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합니다. 지역 대학에서 기술경영과 지역 창업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우수한 인재들이 하나둘 지역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익숙해져야 하는 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

학생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현실적인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2. 20%라는 숫자가 말하는 것


중앙일보 보도(2025년 7월 28일)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비수도권 소재 기업에 대한 벤처투자 비중은 20%에 불과합니다. 비수도권 지역에 전체 벤처기업의 40%가 있음에도 말입니다.

더 놀라운 수치가 있습니다. 정부 주도 모태펀드는 2005년 출범 이후 2024년 8월까지 총 34.3조 원을 조성했습니다. 이 중 지방 계정에 투자된 금액은 1.1조 원, 전체의 3.2%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펀드조차 지역에는 턱없이 적은 자원이 배분되고 있는 것입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4827?fbclid=IwY2xjawN_qEJleHRuA2FlbQIxMABicmlkETFOQXhIa0R2bU1TVVpXQWpBc3J0YwZhcHBfaWQQMjIyMDM5MTc4ODIwMDg5MgABHnbZ0a-l3i01V4HXNADuipPKSGxKqOlbaVZJ42hrWOxRtqf4b7WLVg2W9x1l_aem_tpozsdXF3sK-QJeN-DI5iA


국내 유니콘 기업을 떠올려보세요. 쿠팡, 토스, 무신사, 야놀자... 거의 모두 서울에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집중은 주요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현상입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캘리포니아 남부에 있고, 중국의 텐센트는 베이징이 아닌 선전에서 시작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미래의 유니콘들입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정부가 선정한 아기유니콘 기업 350곳을 보면, 수도권이 276곳으로 78.9%를 차지합니다. 서울만 해도 199곳, 전체의 56.9%입니다. 비수도권은 고작 21.1%에 불과합니다.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4102619591546522


3. '지역혁신'이라는 이름의 아이러니


부산일보 보도(2025년 10월 23일)는 더욱 충격적인 현실을 드러냅니다. 지역혁신을 위해 만들어진 '지역혁신펀드'의 실상입니다. 3년간 투자된 약 2,028억 원 중 46%가 서울과 경기 소재 기업에 투자되었습니다.

이름은 '지역혁신펀드'지만, 돈은 절반 가까이 수도권으로 흘러간 것입니다. 지역을 위한 예산이 이미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나마 배분된 예산의 절반이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지역의 현실과 목소리가 중앙에서 외면받는 구조적 불균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래 기사는 중앙 언론 어디에서도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역에 배분되는 예산이 이미 매우 적은 상황에서, 그 예산의 절반 가까이가 수도권에 투자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역의 현실과 목소리가 중앙에서 외면받는 구조적 불균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5102319495388676&fbclid=IwY2xjawN_qNVleHRuA2FlbQIxMABicmlkETFOQXhIa0R2bU1TVVpXQWpBc3J0YwZhcHBfaWQQMjIyMDM5MTc4ODIwMDg5MgABHnbZ0a-l3i01V4HXNADuipPKSGxKqOlbaVZJ42hrWOxRtqf4b7WLVg2W9x1l_aem_tpozsdXF3sK-QJeN-DI5iA


4. 지역에서 창업한다는 것


제 연구실을 찾아오는 창업 희망 학생 또는 대표들과 나누는 대화는 늘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갑니다. "교수님, 여기서 창업하면 투자받기 힘들죠?" "여기 네트워크로는 한계가 있지 않나요?" 그들의 질문에 거짓으로 희망을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지역에서 창업하려는 이들이 마주하는 첫 번째 벽은 초기 자본 확보입니다. 같은 아이디어, 같은 팀이라도 서울에 있느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투자 유치 가능성과 금액이 달라집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왜 굳이 지역에서 창업하느냐, 모든 게 갖춰진 서울에서 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박사과정 시절 R&D 효율성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혁신의 핵심 요소를 단순화하면 결국 사람과 자본입니다. 우리 창업생태계는 자본의 흐름을 따라 인재가 모이고, 투자자가 모이고, 지원 인프라가 형성됩니다. 그 흐름의 종착지는 언제나 서울입니다.


5. 공정하지 않은 평가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지역은 과연 얼마나 많은 자원과 기회를 받았을까요?

정부 R&D 예산을 평가할 때, 기초 연구에도 기술사업화 성과나 경제적 파급효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잣대를 적용한다면, 장기간 막대한 투자가 집중된 수도권은 투입 대비 산출 측면에서 어떤 성과를 내고 있을까요? 이런 검증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성과는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에는 어떤 자원과 기회가 주어졌으며, 그 투입량을 고려할 때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평가가 공정한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 효율성과 효과성,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현재 수도권은 이미 민간 자본과 시장 메커니즘이 충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자본이 넘쳐나고, 인재가 모입니다. 여기서는 효율성의 원리가 작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역은 다릅니다. 지역은 생태계 조성을 위한 초기 자본과 전략적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단계입니다. 여기서는 효과성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민간이 투자하지 않는, 아니 투자하지 못하는 지역에 실질적인 마중물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국가의 균형적인 혁신역량 강화는 수도권 집중이 아닌 지역 생태계 육성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국가 경쟁력 향상입니다.


2016년 그날, 지상파 방송에서 드라마가 정상적으로 흘러나오던 순간의 상실감. 2025년 지금, 지역혁신펀드가 수도권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는 허탈함. 두 순간 사이에는 9년이라는 시간이 있지만,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합니다.


오늘도 연구실 창밖으로 캠퍼스와 멀리 바다를 바라봅니다. 이곳에서 배운 학생들이 이곳에 남아 꿈을 펼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그 질문에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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