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을 읽고

by Book lilla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안은 여름이 아닌가? 왜 안은 여름이 아니지?라는 호기심이 생겨 목차를 들쳐 보았더니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의 내용은 없다. 즉 이 소설집의 새로운? 제목은 이 작품집에 실려있는 다른 소설들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새로이 지었을 것이다. 다른 다른 소제목을 쭈욱 훑어보면서 밝은 이야기들은 아닐 거라는 예측을 했다. 여름이 밝고 생동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에, 반대적인 의미라면 어두운 이야기일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을 했다. 이 소설집의 첫 단편 제목이 ‘입동’인 걸 보면 내 예측이 아주 틀린 것 같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첫 이야기 ‘입동’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내 아이라면 나는 어땠을까?라는 감정을 이입하는 순간, 나도 울컥해졌다. 전에 박완서 씨가 아들을 떠나보내면서 쓴 글을 읽은 뒤 두 번째 경험이었다. 이야기는 부부가 한 반 중에 도배하는 걸로 가볍게 시작이 되었는데, 중간에 아이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훅 들어와 읽는 나의 가슴을 후벼 팠다. 정작 더 가슴을 아프게 한 건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 무관심 혹은 과한 관심들이었다.

‘아내는 사람들이 자주 쳐다본다고, 아이 잃은 사람은 옷을 어떻게 입나, 자식 잃은 사람도 시식코너에서 음식을 먹나, 무슨 반찬을 사고 어떤 흥정을 하나 훔쳐본다고 했다(본문 23쪽)’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본문 36쪽) ‘

‘-다른 사람들은 몰라. 나는 멍하니 아내 말을 따라 했다.-다른 사람들은 몰라(본문 37쪽). 대목에 고스란히 그 아픔의 흔적이 드러났다.


‘입동’은 주인공들의 마음의 추운 겨울을 의미하고, 책의 맨 앞에 포진하면서 이 책 전체의 무게를 좌우했다. 그리고 주인공들만의 추위가 아닌 우리 사회가 얼어붙음을 상징한 것 같다. 왜 우리는 끝까지 그 아픔을 함께하고 아파해주지 못할까? 지금 우리 각자의 삶도 그만큼 아프기 때문만은 아닐까? 오늘 출근을 하면서도 불현듯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고, 이야기의 감정이입이 되면서 다시 한번 울컥해졌다.


이 책에서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가리는 손’이었다. 이 이야기는 다문화가정의 중학생을 둔 한 엄마의 이야기이다. 엄마는 아이를 혼자서 정성껏 키우지만 중학생 아들은 노인 폭행사건에 연루된다. 이 사건의 동영상은 일파만파로 퍼지고 가해학생으로 지목을 받지만 경찰에서 동영상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판명이 되고 처벌은 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의 생일날 아이와 대화 속에서 동영상 속 아이의 ‘가리는 손’이 비명을 가린 게 아니라 웃음을 가린 게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웃음 고인 아이 입매를 보자 목울대가 매캐해지며 얼굴에 피가 몰린다. 불현듯 저 손, 동영상에 나온 손,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재이가 황급히 가린 게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본문 220쪽)’


이 글에서 가리는 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까? 앞에서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노인의 장례식장에 갔다. 노인의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아들에게 죽은 사람에게 절하는 법을 가르치면서 밥 먹는 손을 가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준다. 이 부분에서 가리는 손은 유교적 관습에서의 예를 의미하는 도덕적인 ‘좋은 손’을 의미한다면 뒷부분에 재이의 웃음을 가리는 손은 재이의 가식을 가리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나쁜 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 손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을 방해한다.

이 이야기 역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지만 주인공 엄마가 보여주는 삶에 성실성과 객관적 시선으로 아들을 보려고 하는 마음과 반성은 아직 우리 사회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준다. ‘정말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재이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뼈아픈 반성이 우리 사회를 건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집의 각 단편들은 현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면서 겨울처럼 차디찬 우리 현실을 조명한다. ‘노찬성과 에반’은 유기견 이야기를 통해 결국은 주변으로 밀려나는 약자의 소외를 이야기한다. 또한 끊임없는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찬성이 에반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지만, 새로 생긴 휴대전화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결국 인간이 타자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보다는 개인의 욕망에 치우침을 말하려는 것은 아닐까?

‘자루에 든 게 뭔지 끝내 확인하지 않고, 그때까지 오른손에 꽉 쥐고 있던 휴대전화를 든 채 자리를 떴다(본문 80쪽)’

약자, 하찮고 작은 것들에 연민을 가지지만 우리의 녹록지 않은 삶은 우리를 마냥 연민에만 빠지게 두지 않는다. 이 글은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론 삶에 희망,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종국에는 개인의 욕망에 집착하지만 찬성이 에반에 기울였던 연민과 관심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작가는 우리들에게 조금 더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라고 경각심을 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건너편’은 주인공인 이수와 도화의 심리적 거리를 강 건너편처럼 건너기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건너편’은 남의 편인 ‘남편’과도 묘하게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도화의 읊조림과 생각에서 이수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지만 가까워질 수 없는 ‘건너편’만큼의 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본문 115쪽)’ 도화의 이 읊조림은 다시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 없다는 절망감을 주는 것 같다. 그런데 더 절망적일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모두 그 ‘어떤 게’ 어떤 것인지도조차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어떤 게’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막연하게 삶을 살아내기도 한다.

바깥은 따스하고 화사한 여름이지만 책 안에는 냉엄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치열한 몸부림을 세밀하고 임팩트 있게 그려준다. 책 표지(바깥)도 톤도 화사하고 밝고 화사한 느낌의 여름이지만 책 안의 내용은 차갑고 무겁다. 그렇다고 마냥 절망적이고 냉소적이지는 않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 시대의 우리를 공감하게 하고 성찰하게 한다. 얇고 가벼운 책이었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주었다. 요즘 인문학, 철학에 대한 책을 주고 읽고 있는데, 오래간만에 읽은 얇고 자그마한 소설책 한 권이 그 어떤 두꺼운 철학책보다 더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도서정보: 바깥은 여름, 김애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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