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나는 왜... 내가 힘들까>를 읽고

by Book lilla

<나는 왜... 내가 왜 힘들까>, 마크 R. 리어리, 박진영 옮김, 시공사


‘나는 왜... 내가 힘들까?’ 제목에 확 이끌렸다. 읽다가 보니 많은 부분이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오래된 노래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새’ 노래가 생각이 났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생각난 김에 노래를 들어 보았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자우림의 리메이크 곡이 가슴을 파고든다. 새삼 노래 가사가 가슴에 꽂힌다.‘내 속에도 내가 너무도 많다!'


이 책의 원제가 'the curse of the self'이기도 하고, 평소에도 '자아'에 관심이 많아 뜻부터 다시 찾아보고 개념을 조금 명확히 해보고 싶었다.

영어 'self'를 사전에 찾아보니(다음사전) '자아, 자기, 자신'으로 나와있다. 다음은 Daum 사전에 '자기와 자아'의 뜻을 살펴보았는데 '사고, 감정, 의지, 체험, 행위 등의 여러 작용을 주관하며 통일하는 주체'로 나온다.

상담공부를 하면서 자기와 자아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한 동안 잊고 있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상담연구회에서 이 책을 읽고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자아’와 ‘자기’ 용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준비한 회원에 따르면 ‘자아’는 내가 인식하고 의식하는 나이고, ‘자기’는 종교에서 궁극적으로 찾는 것,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정의되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서양 철학에서 흔히 하는 질문 ‘나는 누구인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자신 본연의 모습, 궁극적인 나를 찾아가라는 메시지가 아닌가?라는 인식에 모두가 공감하였고, 이의 정의에 따르면 ‘자기’와 ‘자아’ 관련된 다소간의 정의들은 조금 수정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 의견에 따라서 여기서는 self를 자아로 보겠다.


소크라테스는 왜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까? 왜 자신을 알라고 하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웬만큼 알지 않을까? 자신을 아는 게 도움이 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철학자나 선각자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깨우쳐야 한다고 하거나 자신을 알라고 일갈한다(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에 적힌 말 ‘너 자신을 알라’). 다중지능 이론의 자기 성찰 지능은 다른 능력을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ebs 다큐에서도 성공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검사 결과를 방영한 적이 있음->성공한 사람 대상 분석 결과 자기 성찰 지능이 공통적으로 높음 확인).


자아성찰 지능은 네이버 검색에 '자신의 감정을 잘 알고 다스리는 사람, 신체적 컨디션과 행동을 잘 조절하는 사람, 종교인에게서 발견되는 능력으로 자신의 느낌, 장단점, 특기, 희망, 관심 등 자기 자신의 본 모습에 대하여 보다 객관적으로 그리고 심층적으로 잘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재능'으로 나와 있는데, 이 정의에 따르면 '자기성찰지능'으로 명명하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것이나 다중지능 이론에서 자기 성찰 강조하는 것을 결국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동양철학에서 강조하는 ‘자아 꺼두기’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일기를 쓰는 것도 자신의 본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일기지도를 할 때 아이들이 '일기를 왜 쓰냐?'고 반문하면,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못해준 것 같다. 이제는 좀 더 차분하게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을 돌아보고 살펴보면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진짜 삶?을 누리지 않을까?라고.


나는 왜 내가 힘들까? 사물이나 사물의 본질, 있는 그대로를 보기 보다 나의 기준, 나의 틀에서 해석된 기준으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고 내 안의 생각에 따라 사물과 사람을 판단하지는 않았었는가? 가끔 현타가 올 때 어떤 사건에 대해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보면 내가 그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내 감정에 치우쳐 확대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글을 쓰는 계기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이 얘기할 때 집중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듣지 않고 내 생각에 빠져서 듣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위와 같은 생각들에 빠져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또 나만의 생각에 빠졌다 ㅎㅎ.그래서인지 전체적인 책 내용을 정리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저자가 고민한 관점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해법 제시를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나는 왜 내가 힘들까?

이 책의 원제는 'the curse of the self, 자아의 저주'이다. 저자는 이 책이 '인간의 자기 고찰 능력과 자기 중심성, 자기 고양성이 어떻게 개인적, 사회적 문제들을 불러오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아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이야기들에 비판적인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고 했다.


자아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312, "한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그 사람이 자아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315, 자아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동맹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서운 적인 셈이다.


해법 1, 자아 꺼두기

321, 명상이야말로 자아가 재잘거리는 것을 '즉석에서' 줄여주는 기술을 습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320, 만약 나한테 권한이 주어진다면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삶의 기술'이라는 과목을 넣어서 모든 학생들이 자아의 간섭을 줄이는 법을 배우도록 하고, 대학교나 직장에서 심화과정을 수강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내적 대화를 조용하게 하는 방법들은 꽤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현재 상황에 주의를 집중시켜서 자아가 하는 생각에서 최대한 벗어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명상 연수가 많이 진행되고 있고, 선생님들도 관심을 가지고 많이 배우고 계시고 배운 것을 활용하셔서 아이들 지도 시에도 많이 활용하고 계시는 것 같다. 나도 관심이 있어서 관련 책을 조금 읽었었고, 수업시간에 잠깐씩 활용을 했었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1분 정도 눈을 감고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시간을 갖곤 했었다. 잠시 숨을 크게 한 번 들여쉬는 것만으로도 전쟁같은? 교실에서 숨통을 트일 수 있지 않을까?

지속적으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기억을 떠올렸으니 다시 시도를 한 번 해봐야겠다.


해법 2.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322, 흔히들 우리가 실제 세계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에 반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언제나 자아에 의해 해석된 세계이다.

323, 한편 나를 포함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고유한 개별적 존재인지 깨달으면 자기 중심성과 싸워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


'자아에 의해 해석된 세계'를 불교에서는 '아상'이라고 했던가?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자기가 생각하는 상, 선입견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도 선입견이 강한 편이라서 많이 떨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을 대할 때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난 글('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책을 읽고)에서 나는 이런 덫에 많이 빠졌음을 고백? 한 바 있다.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저 아이는 매번 저래'라는 선입견으로 바라본 순간부터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요즘은 이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은 하나의 우주이자 존엄한 존재'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되뇌인다. 사실이 그러하지만 나는 간혹 잊어버리고 내 생각에 갇혀 버리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깨어있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해법3, 자기고양성과 자기방어 줄이기

328, 어려운 상황을 겪더라도 자신을 지나치게 비난하지 않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마치 양육자가 자녀를 사랑하고 염려하듯 자신에게 꼭 필요한 보살핌을 주는 것이다.


자신을 남들보다 높이려는 자기고양성은 지나치지 않으면 조금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나도 가끔 '나는 괜찮은 녀석이야'라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러고나면 정말 괜찮아 질 때가 있다. 물론 너무 많아지면 자만에 빠지게 된다. 넘칠 경우 당연히 줄여야 한다.


해법4, 자기통제 최적화 하기

330,우리가 억누르려는 충동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자신의 해석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자기대화가 여러 가지 충동을 만들어내고, 그 충동을 억제하려면 자기통제가 필요해지는 식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자기통제를 위해서는 먼저 자기대화를 잠재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모든 싸움이 사소한 것에서 발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건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일어나지만 이를 스스로가 확대해석해서 작은 사건은 아주 커지게 되고 이에 따라 분노도 커지게 되는 것 같다. 따라서 자기 스스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잠재우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 자기 스스로를 다독거리고 '별일 아니야, 그럴 수 있어'라고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학교현장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다.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되지만 스스로가 감정을 키우고 급기야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