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by Book lilla

유명인들이 많이 추천했던 책 중의 하나가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광고인 박웅현, 작가 유시민 등이 추천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유명인들의 추천뿐 아니라 고전 도서 추천 목록에도 항상 올라있었던 책이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몇 번의 시도 끝에 완독 할 수 있었다. 유명한 많은 분들이 추천하기에 꼭 읽어보고 싶었지만 책에 잘 몰입이 되지 않았다. 늘 책 앞부분만 읽다가 그만두어서인지 유명인사들이 왜 이 책을 추천을 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나중에 다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지만 이 책은 굉장히 철학적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나는 유명한 소설책이라 재미에 포커스를 두고 읽었기에 쉬이 포기를 했던 것이다. 이 책은 쉽게 흥미를 던져주지 않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던진 주제는 인간의 ‘자유’였다.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조르바가 주인공에게 말하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자유를 추구하는 자였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하고 주인공이 물으니 “자유라는 거지!”라고 답한다. 그 결정적인 장면은 28-29쪽에 묘사되어 있는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이다. 조르바는 도자기 만드는데 손가락이 거치적 거린다고 손가락을 잘라 버린다. 조르바에게 인간은 곧 자유를 의미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이 자유로울 때, 자유를 추구할 때만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전반에 걸쳐 직접적으로 불교, 노자의 자연주의 사상? 등 동양사상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때, 자유를 추구하는 점에서 장자의 사상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있다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영혼보다는 육체를, 이성보다는 본능에, 생각보다는 행동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주인공인 화자는 본능보다는 이성을, 육체보다는 영혼을, 행동보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이런 특성을 가진 주인공은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조르바를 흠모하고 사랑? 했다. 한 마디로 조르바는 본능에 충실하고 행동을 추구하는 열정적이고 정열적인 사람이었다.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고라고요.”, “그저 해나가기면 하면 돼요.”
“... 내 오관과 육식을 제대로 훈련시켜 인생을 즐기고 이해하게 된다면!”
'그는 산투르가 사나운 짐승이어서 행여나 물릴세라 조심스럽게 다시 싸기 시작했다. 「하고 싶지 않대요..., 그러니 억지로 시키지는 말아야지요.」'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

조르바는 ‘지금 여기에’ 순간을 충실하게 살고, 살아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는 사나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야 함도 이야기한다. 그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는 남자나 꽃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자신에게 묻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호박, 바닷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한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

그리고 조르바는 누구보다 자신을 믿는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고,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강하게 믿는다. 다른 말로 자기 확신,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의미로 자아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껏 너는 그림자만 보고서도 만족하고 있었지. 자, 이제 내 너를 본질 앞으로 데려갈 테다.'
'<왜>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됩니까? 자, 날 데려가요.'
'나는 내 정열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도 성물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것 보게, 아무리 그래 봐야 우리 오두막에는 들어올 수 없어.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겠어. 내 오두막을 엎어? 그렇게는 안되네.>'
'「내 영혼에는 들어오지 못해.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어. 나를 뒤엎는다니, 어림없는 수작!」'

조르바는 자유인, 자신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열정적이고 매 순간을 사며 자아가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나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조르바 보다는 작가와 비슷한 유형일 것 같다. 육체보다는 영혼을, 본능보다는 이성이 강하다. 행동을 하기 전에 수백 번 생각한다. 예의와 형식, 관념을 중요시하는 유교적인 집안에서 자란 나는 조르바의 행동이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 낯설기도 하다.

나는 왜 자유롭지 못할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순간을 즐기지 못할까? 나를 믿지 못할까? 그렇다면 나는 올바른 인간이 아닌 덜 된 인간인가? 그래서 난 행복하지 않은가? 과연 조르바의 삶이 올바른 삶인가?

많은 철학자들이나 선지자들이 자유를 외치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을 강조하는 걸 보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토록 열망한 인간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써져 있다고 했다. 카잔차키스는 죽어서 자유를 얻은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 범인들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가능한 것인가?

난 아직도 많은 것에 얽매여 있고, 바라는 것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다. 과연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조르바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한 순간 만이라도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삶을 살게 할 것인가? 과연 우리 교육 현실에서 자유로운 인간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왜 이 책을 세 번 시도한 끝에 읽어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에 빠져들고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도서정보: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저, 이윤기역, 열린책들

니코스 카잔차키스저, 이윤기역, 열린 책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 먹는 여우>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