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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ul 02. 2022

복직을 준비하는 시간

내가 직접 만드는 나의 이야기

복직일까지 남은 시간은 약 일주일 정도이다. 나는 이제 회사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회사에 다닐 땐 평일에 하루만 쉬어도 행복한데, 일주일의 휴가라면 꿈만 같을지도 모른다. 남은 일주일이란 그런 시간이겠지. 지난 6개월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2022년은 내게 어떤 한 해가 될까. 벌써 2022년도 절반이 지났는데, 그 상반기는 분명 휴식기이기도 했고, 휴식기가 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간이기도 했던 것 같다.


 지난 화요일은 우울과 불안이 최고치에 달했다. 수술을 받고 퇴원한 강아지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모든 스트레스가 증폭되는 것 같았다. 복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난 상반기 동안 나름대로 노력한 일들이 어떤 성과도 얻지 못했다는 것도, 앞으로의 인생이 전부 암담하게 느껴지고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는 것도.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가까운 사람의 일인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자꾸만 비극적인 소식을 찾아보았다. 거의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다. 눈이 맵고 목이 탔다. 슬플 때는 좀처럼 좋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기가 힘들다. 과거의 좋았던 한때도 이제는 다 끝나버린 옛날 일인 것만 같아서,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픔과 슬픔만 가득할 것처럼 느껴진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버티며 생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만 같은 절망감에 빠진다. 인생이 몇십 년짜리 고문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때부터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잠드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밤 12시, 새벽 1시, 새벽 2시... 슬픔이 극에 달했던 화요일 밤에는 잠들기 어려울 만큼 명치께가 답답해졌다. 물리적인 고통은 아닌 어떤 분명한 심리적 고통. 그렇게 마음이 아픈 채로 잠들 수가 없었고 무언가로 꽉 차 버린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당장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 오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서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아침까지 기다리기가 너무도 힘든... 우울증에 대한 방송을 듣다가 오히려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가까스로 재미있는 콘텐츠를 찾아 주의를 전환했다. 비타민을 챙겨 먹는 것처럼 내가 챙겨야 할 필수 영양소 중 하나가 유머인데, 유머는 이렇게 절벽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숨통을 틔워 준다. 그렇게 새벽 세 시가 되기 조금 전에 잠들었고,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잠에서 깼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빨리 약이라도 먹어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약이 절실해지는 고통이었다. 정신과 약에 대해서는 아주 얕은 지식만 있을 뿐이라 지금까지 약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사실 아직도 그렇긴 하다. 약이 내게 줄 수 있는 득과 실이 어떤지는 좀 더 공부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처음 약을 찾아 병원에 갔던 것은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 2달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직장에 적응하는 것도 문제긴 했는데, 그때는 아빠가 갑자기 쓰러져서 입원해 있는 상황이었다. 두려움과 불안감 때문에 약이라도 먹고 싶어서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아직 약이 필요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당연히 겪을 수 있는 적응의 과정이라고 했다. 대신 다른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 주었는데, 스스로 멘탈을 케어할 수 있는 칭찬일기(?) 같은 것을 써 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런 식으로 좀 더 인내와 용기를 갖고 마음을 다잡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2년 6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이번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신과를 찾아갔다. 약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간단한 자기보고식 검사만 몇 종류 해 보고, 점수가 높다며 바로 약을 처방해 주었다. 너무도 간단한 과정이었다. 항우울제가 아닌 항불안제를 처방받았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강아지의 상태나 복직에 대한 불안 또한 큰 상황이었기에 적절한 처방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약은 하얗고 작은 타원형 모양이었다. 하루에 3번 먹도록 처방을 받고 일주일분을 받아 왔다. 


 그날 오후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했고, 당장은 정상적인 수치가 나와서 꽤 안도하게 됐다. 강아지의 상태도 점점 호전되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에 조금씩 불안감이 가셨다. 깜빡 잊고 놓쳐 버린 점심 약을 3시 30분쯤 먹었고 저녁 약은 7시쯤에 먹었다. 약을 먹은 후에는 속이 메스꺼웠다. 약이 맞지 않아서였을까? 머리가 지끈거렸고 심장이 두근거리다가 간헐적으로 맥박이 쿵 떨어지는 느낌, 어찔어찔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 3시쯤 잠든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9시가 넘어서 일어났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약을 먹었는데 메슥거림이 심했다. 약을 먹고 스터디카페로 나가는 길에 어질어질하고 어찔어찔한 느낌이 꼭 술에 취한 것 같았다. 딱 누워서 쉬고 싶은 느낌... 머리도 지끈거리고, 토할 것 같아서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결국 그날 오전은 스터디카페 책상에 엎드린 채 쉬어야 했다. 속이 좋지 않으니 점심 약은 패스 했고, 밤 9시쯤 또 한 번 약을 먹고 잤더니 괜찮았다. 


 강아지의 상태가 호전되어서일까, 약이 있다는 든든함 때문일까, 이후로 내 기분은 꽤 괜찮아졌고 다음 날에도 아침/점심 약은 패스하고 저녁에만 약을 먹었다. 오늘도 마찬가지, 아침/점심 약은 건너뛰었다. 마음대로 이런 식으로 조절해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안 괜찮겠지만... 속이 너무 안 좋고 기분은 꽤 괜찮았으니...) 

이런 상태가 되니 아예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란 말이냐....! 하지만 일단 복직 이후 적응하는 날까지는 약의 도움을 받고 싶은... 의존적인 마음이 생긴다. 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편이 하나 생긴 것 같은 든든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복직은 일주일이 남았고, 마침 합평 소설을 제출하는 날짜도 일주일 정도가 남았다. 휴식기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소설을 완성하며 보낸다는 것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 비록 나는 올해의 상반기에 원했던 어떤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 기간 동안 내가 쓴 소설들이 남았다. 너무도 추상적이고 신기루처럼 흩어져 버리는 동시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떡진 채 뭉쳐져 있는 감정과 생각들, 그것들을 내 손으로 직접 가시화시키고 만질 수 있는 소설의 형태로 직조해 낸다는 것은 정말 의미 있고 치유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고통과 절망에 잠긴 채 마지막 소설은 완성하지 못한 채로 끝나버릴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힘이 생긴 지금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여러 모로 부족하고 모자란 소설이겠지만, 그걸 완성하면서 나의 상반기에 대한 이야기를 갈무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된다. 이번 소설은 내가 지난 일주일 동안 경험한 고통을 재료로 만드는 이야기다. 혼란과 절망뿐이었던 시간들을 지나서,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로 묶일 때, 비로소 의미를 부여받게 될 때. 그것만으로 나의 모든 절망과 고통은 잠시나마 보상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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