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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ul 10. 2022

시작을 앞둔 일요일의 밤

의연하게 당면하기를 씩씩하게 해 나가기를

 돌아갈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왔다. 결국 마땅히 이직을 할만한 자리를 찾지 못했고, 시간은 금방 흘러서 휴직 기간의 마지막의 마지막 날까지 왔다. 내일 아침부터는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내일부터는 다시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출근을 앞둔 일요일 저녁... 휴직이 끝나면 그간 출근하지 않았던 일수만큼의 월요병이 몰려서 온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체념한 상태라서 그런지,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지난 열흘 정도 복용해 온 항불안제의 효과인지, 생각보다 많이 고통스럽지는 않다. 지금의 마음은 걱정이 반, 믿기지 않음이 반이다. 아직도 내일 출근을 한다는 사실이 꿈인 것만 같고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출근을 앞둔 마지막 기간 동안에는 그동안 미뤄 왔던 병원들을 다녀오면서 시간을 보냈다. 직장에 다닐 때는 토요일 오전이 아니면 병원에 가기 어려웠고, 그래서 토요일 오전에 서둘러 병원에 가면 언제나 환자들로 북적여서 한참을 기다리느라 오전 시간을 다 보내곤 했던 것 같다. 휴직을 하고 나서 가장 큰 해방감을 느꼈던 순간들은 의외로 소소했는데, 평일 오전에 요가 센터에 가서 운동을 할 때(이때가 찐이었다.. 더 이상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 된 느낌...). 그리고 병원에서 아무 요일 아무 시간에나 진료 예약을 잡을 때였다.. 강아지가 아파서 동물 병원에도 자주 오가야 했는데, 마침 내가 휴직 중이어서 평일에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우선은 복직용 진단서를 받기 위해 병원에 다녀왔고, 앞으로 복용할 약을 처방받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새로운 병원에도 가보게 되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우울감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아왔던 내가 지금까지 정신과 약 한번 먹지 않고 살았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놀랍기도 한데, 어쨌든 그것은 약에 대한 불안감과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복직을 앞두고 이토록 스스럼없이 약을 먹게 된 것은, 어쩌면 내가 약 앞에서 결국 항복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심리적 고통 때문에 나는 그저 항복, 항복하는 마음으로 약을 받아들이게 됐다.


 처음 항불안제를 먹고 얼마간 두통과 메슥거림과 어지럼증 등의 증상이 있어서, 하루에 3번 먹어야 하는 약을 저녁에 한 번만 먹는 것으로 내 선에서 자체적으로 복용량을 줄여 버렸다; 약이 더 필요할 것 같았던 날은 하루에 2회까지 복용했다. 그렇게 내 맘대로 약을 먹다가 일주일 뒤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그러면 전화를 주지 그랬느냐고 했다. 나는 그냥 적게 먹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 우리는 지난 일주일 간의 경과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첫 면담에서 이야기하지 않았던 부분들을 몇 가지 더 묻고 답했다.

 이제는 출근을 해야 하므로 다음 토요일로 진료 예약을 잡아 주셨고, 약 복용 계획은 내가 자체적으로 변형시켜 버린 것과 같이... 하루 2회 복용으로 처방했지만 상황에 따라 하루 1회로 줄여도 괜찮다고 하셨고, 대신에 불안감이 심할 때 필요시 먹을 수 있도록 다른 종류의 약을 추가 처방해 주셨다. 약 봉투를 받아 들고 있으니 어쩐지 안심이 됐다.

 부작용에 대해서는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약 이름으로 검색을 해 보니 의존성이나 금단증상이 거의 없는 약이라고 해서 조금은 안도했다. 복직을 하고 적응을 하기까지 당분간 심리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약의 도움을 받을 것 같다. 하지만 당연히,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노력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약의 도움을 받아서 극심한 고통을 어느 정도 억제하게 되면, 그렇게 확보한 시간 동안에 건설적인 사고 패턴과 행동 패턴을 연습할 수 있을 것이다(약이 없을 때 나는 주말 대부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보냈다.).


  운동은 하고 있느냐는 의사의 질문을 듣고 이제는 정말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달 전 요가 센터에 다니다가 등록 기간이 끝난 후에는 거의 운동을 하지 않고 지냈다. 기껏해야 계단 오르기를 잠깐 하는 정도였다. 체력 증강에는 달리기가 좋다는 말을 듣고, 앞으로는 저녁에 조금씩 달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만 먹고 실제로 나가게 되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는데, 어제 처음으로 밤 산책로를 뛰어 보았다.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는 상태였으므로 실제로 달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신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 서늘한 밤공기를 느꼈다. 산책로를 따라 흐르는 천변의 물소리,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 산책하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저마다의 속도로 걸어가는 사람들. 하늘에는 반달이 떠 있었고, 나는 그 모든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산책로 위에서 나는 자유롭게 뛰다가 걷기를 반복하며 내 속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금요일에는 복직 전 미리 인사를 드리러 직장에 다녀왔다. 반년만에 만난 직원들은 어제 만났던 것처럼 익숙했다. 몇몇 분들은 나를 알아보자마자 안아주셨다. 처음 보는 직원 분들도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반갑게 맞아 주는 분들 덕분에 마음 편안히 웃을 수도 있었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부서 배치와 팀 배치가 무난해 보여서 안심했다. 앞으로의 일들은 가 봐야 아는 것들이겠지만, 어떤 일들이 생기든 스스로를 잘 챙길 수 있기를, 무탈히 극복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이들에게 실수로라도 상처 주지 않도록 노력하고, 사소한 상황 속에서 내가 지레 상처받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더 강하고 튼튼하게 앞으로의 날들을 지낼 수 있길, 그러면서 주변도 충분히 돌아보고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합평 수업은 당분간 쉬어 가려고 마음먹었지만, 교육원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덜컥 이번 달 말부터 또 새로운 수업을 하나 들어보기로 했다(후기들이 너무 좋길래 꼭 들어보아야 할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그런 것들이 일상에서 내게 에너지를 채워준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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