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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ul 24. 2022

복직 2주 차의 날들

글쓰기가 삶에게 건네는 용기

복직 후 시간은 착실히 흘러 두 번째 일주일이 끝이 났다. 서툰 걸음으로 먼 길을 걷는 것처럼 하루씩을 보냈다. 가장 다행인 점은 주말을 온전히 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복직 전까지도 과연 주말에 출근을 하지 않고 쉴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는데, 다행히 당분간은 주말에는 출근하는 일 없이 쉴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은 편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의 문을 쉽사리 열지 못하고, 되도록 침묵을 지키고 나의 존재를 죽이며 시간을 보낸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의 중간이라도 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가만히 있는다. 그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괜히 나대다가 더 큰 곤경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나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힘쓴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패턴이고 생존 방식이기도 한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나는 이 시간 동안 한없이 이완되고 자유로워진다. 내가 내게 개방적이 되고, 나의 구석구석을 세심하고 유심하게 관찰한다. 나를 정돈하고, 묵은 때를 벗겨내고, 먼지들을 털어내고, 환기하는 시간이다.


 지난주 토요일에 부스피론을 하루 3회까지 복용하는 것으로 처방받았고, 이후 일주일간 되도록이면 3회 모두 약을 복용하려고 마음먹었다. 부스피론은 내게 분명 부작용이 있어서, 처음에는 하루 1회 복용이 적당했고, 이후에는 조금씩 하루 2번까지 먹어도 괜찮아졌고, 이제는 하루 3번 먹는 것도 거의 괜찮은 것 같다. 다만 가끔 약 먹는 것을 잊어버려서 하루 2회 먹은 날이 반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약 복용 일지를 기록하는 것도 좋을 텐데 생각만 하고 제대로 기록을 하지는 않았다. 이번 주에는 병원 방문 일정이 없다. 다음 주 토요일에 병원에 가기 전까지는 매일 하루 3회 약을 복용할 것이다. 사실 아직도 약으로 인한 효과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는 잘 체감이 되지 않는다. 이거라도 먹으면 좀 더 낫겠지 싶은 위약 효과로 챙겨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의 패턴을 정리해 보자면 대강 이런 식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단 기분이 최악이다. 출근 직전에는 분노를 참을 수 없고 사소한 모든 자극들에도 짜증이 가득하다. 일찍 출근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나의 모든 감정의 스위치가 차단되는 느낌이다. 사무실에 발을 딛는 순간 내 모든 욕구와 감정은 차단되고 영혼이 증발해버린 것 같은 상태가 된다. 그 상태로 사무실에서 영혼 없이 모든 일과를 마친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 같다. 퇴근을 하면 집까지 가는 길 위에서 나의 하루를 돌아본다. 주로 내가 어느 부분에서 실수한 건 없었는지를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닌가, 사소한 것까지 되짚어 보면서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된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피곤해서 잠시 쉬다가 저녁을 대충 먹고, 저녁 8시에는 운동을 하기 위해 밖에 나간다. 주로 산책로를 빠른 속도로 걷는다. 여름밤의 산책로는 어둠 속에서도 청량하고 활기차다. 산책로를 걸을 때 나는 머리를 비우고 깊은숨을 쉬며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 가로등 빛과 여름밤의 어둠을 차례로 통과하면서, 마음 한구석을 깨끗이 씻어내는 기분이 된다.


 지난 월요일에는 단편소설에 대한 피드백을 전달받았다. 손글씨로 적혀 있는 피드백에는 애정과 칭찬이 가득해서, 다른 부족함들에 대해서는 잠시 잊을 정도로 기뻤다. 내가 쓰는 소설이 더 향상되기 위해서는 물론 쓴소리들이 필요하겠지만, 나를 계속 쓰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이처럼 다정한 칭찬과 공감이 아닐까? 소설에는 나의 일부가 강렬하게 담기게 된다. 그 자취를 알아봐 주고, 공감해 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내 존재의 일부가 긍정되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삶의 일부분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다음에 내가 쓰게 될 이야기는 무엇이 될까. 그것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나름의 방식으로 내가 지나온 날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나는 그런 기대를 품고 계속해서 써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내가 내딛는 걸음들을 함께할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임을 안다. 소설을 가지고 나는 삶을 마주하는 것에 조금 더 용기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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