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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Sep 03. 2022

도망가고 싶은 직장인 일기

그런데 내가 나일 수 있다면

 복직을 한지도 벌써 2달이 되어 간다. 일하는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직장에 과몰입하게 되는 건 아닌지, 일에 파묻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된다. 복직 전에는, 다른 무엇보다 나를 최우선으로 여기기로, 내 휴식과 내 건강을 먼저 챙기기로 다짐했다. 남들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자유롭고 편안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벌써 이전의 익숙한 패턴대로 휩쓸려 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남의 눈치를 보고 나를 희생하면서 인내하고 참기만 하는 패턴대로. 그런 상태로는 직장에서 버티는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매번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직장에서의 나는 온전한 내가 되지 못한다. 가면을 쓰고, 나를 숨기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 한다. 진짜 나는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가 전부 모호해진다. 


 나로서 살아갈 때의 빛나는 표정과 에너지를 되찾고 싶다. 나는 나를 지나치게 검열하고 비난하며 평가한다. 나의 특색은 모두 깎여 나가고 감추어진다. 나는 진심으로 웃지 못한다. 나의 웃음은 즐거움에서 우러나는 웃음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계산되고 도출된 답안에 불과하다. 웃어야 하는 상황을 파악하여 지어내는 웃음. 그럼 이렇게 사는 나는 사람인가? 아니면 프로그래밍된 기계와 같은 것일까? 


 삶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버겁고 지겨워진다. 약을 먹으면서 뭔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몇 개월째 약을 먹으면서 달라진 건 내가 더 이상 어떤 종류의 보험에는(몇십 일 이상 약을 복용한 적이 있는 경우)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뿐이다. 나는 내게서 자꾸만 소외된다. 최근 나는 어떻게 해도 소설을 쓸 수가 없었다. 직장에서의 나는 내게 진실되지 못하고 당연히 타인에게도 진실되지 못한다. 나는 나와도 타인과도 제대로 관계하지 못하고 휘청대는 몸뚱이만 겨우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그러한 소외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때로는 참 버거운 형벌처럼. 


 많은 것들을 피하고 도망가며 살고 있다. 언젠가부터 당연하게 까이기를 반복하는 소개팅에서는 이번에도 역시 까였다(나는 무의식적으로 고통 속에서 나를 구해 줄 사람을 찾고, 그 부담이 상대방에게 가 닿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 의존적인 대상을 착취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참가비 10만 원을 내고 밤길 걷기를 신청했지만 당일인 오늘 아침 기차표를 모두 취소해버렸다. 소설 수업을 신청하면 급한 대로 마감에 맞추어 새 단편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단편을 쓴 지 벌써 두 달이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새로운 단편을 쓰지 못하고 있다. 쓰다가 버린 것들이 한 무더기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요즘은 반나절 정도 쓴 것을 버리고 또 반나절 정도 쓴 것을 버린다. 이어가지 못한다. 우물쭈물하고 있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부담은 커지는데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지조차 희미하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영영 그럴 수 없을까. 나는 나를 찾고 내가 되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하는 걸까. 그런데도 글이 이 모양이라는 게 안타깝고. 내 인생에 더 좋은 것들이, 더 남아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싶다. 체념한 채로 살고 싶지 않다. 내게 체념을 강요하고 싶지 않고 덩달아 남에게 체념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어떡해야 진심으로 괜찮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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