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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Sep 17. 2022

소설 수업 자체 휴강한 날

글쓰기에 자신이 없어질 때

토요일 오전이 지나가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8시쯤 눈을 떴다. 동생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 오전 9시까지는 스터디 카페에 가자고 제안했다. 동생이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오전 10시쯤 겨우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을 것이다. 이럴 때는 친구처럼 함께 지낼 수 있는 동생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동생과 나는 자주 싸웠지만 절친한 친구처럼 서로가 인생을 버텨 나갈 의지처가 되어 주었던 것 같다. 내 상태가 좋지 않을 땐 네가, 네 상태가 좋지 않을 땐 내가 힘을 내서 지지할 수 있게 되는 사이. 


참 이상하다. 자유롭게 마음껏 글을 써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쓰기 시작할 때는 부담스럽고 귀찮다. 이게 본업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글을 쓰는 게 본업이었다면 내가 더 잘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엄청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았겠지. 급기야 내게는 재능이 없다고 일찌감치 손을 떼고 손절했을지도 모른다.


금요일 밤에는 소설 수업이 있다. 어제는 금요일이었고, 퇴근 후 집에 도착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생리가 시작됐다. 이럴 땐 내 몸이 내게 잘 협조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내가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에 맞추어 시작되었다는 것이... 

저녁을 열심히 먹고(밥맛이 없어도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으려고 애쓴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잘 먹고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러고 나면 무척 고된 일을 해치웠다는 기분이 된다.) 나서는 좀 앉아 있다가 결국 이불 위로 드러누워 버렸다. 수업을 쨀까, 수업 듣지 말까, 영영 포기해 버릴까, 생각이 끝없이 나아갔다. 

결국은 수업 시작 1분 전에(온라인 수업이다) 오늘 수업 참여가 어렵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수업이 진행되는 두 시간 동안 느긋하게 핸드폰을 쳐다보다가 잠들었다. 


복직을 하고 한 달 정도는 일에 적응을 해야 하니까 수업을 신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업 없이 지내는 일상은 뭔가 허전했다. 수업을 신청하고 한참을 수업이 시작되길 기다렸는데. 막상 수업이 시작되니까 부담이 장난 아니었다. 매주 수업을 포기할까, 관둘까 생각했다. 왜 이렇게 변덕스러운 거야. 심야 수업은 생각보다 더 피곤했다. 수강생들은 모두 열정이 넘쳤고 눈이 반짝반짝해 보였다. 보통 수업이 시작되면 한두 명 정도는 초반에 드랍하기 마련이던데 이번 수업엔 드랍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들 조리 있게 말도 잘하고 똑똑한 데다 소설도 잘 쓰는 분들이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뭐 이런 게 다 수업에 들어왔지 싶을 정도로 덜떨어진 애 같아 보여서 자신감이 떨어졌다. 미리 정리해둔 것들을 발표할 때에도 내 생각과 의견에 자신이 없어졌다. 말할 때마다 목소리가 떨리고 숨이 차서 말하려고 했던 것들을 미처 다 말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면 익숙하게 밀려오는 자괴감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려고 애쓰며 숨을 고르는 시간과... 


소설도 완성해서 빨리 제출해야 하는데 소설마저도 자신이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소설 초고를 완성해봤던 일이 벌써 2달이 지났다. 새 단편 초고를 완성해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도통 내가 쓰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뭘 원하는지, 인물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겠다. 쓸모없는 말들만 줄줄이 이어 놓은 것 같아서 다 그만 삭제해버리고 싶어 진다. 매주 그 모양이라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나는 거대한 무언가에 발목이 잡혀 있는 느낌에 빠져버린다. 형편없는 걸 제출해서 뻔한 비판을 듣느니 도망가버리고 싶은데. 그렇다고 영영 내가 소설을 쓰지 않을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겠지. 그럼 더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언제쯤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부족한 대로 써야지. 지금 내가 생긴 건 이런 모양이니까.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될 수 있는 가장 나다운 사람이 되어야지. 나는 더 이상 내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되어야지. 그러면 나의 모든 모습을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지.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다짐한다. 감추거나 도망가거나 속이지 말아야지. 나를. 아무리 추하고 모자라고 부족하고 어리석어도 그게 나라는 걸 있는 그대로. 그런 고뇌와 부끄러움까지 모두 합쳐서.


다시 쓰기로 결심한다. 이 결심이 결국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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