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원 Nov 03. 2022

나를 강해지게 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은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가을,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으로 혼란스러운 기간을 지나고 있었다. 해야 하는 일들이 쌓여 갔지만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처리가 빠른 편은 아닌 데다 외근이 많아서 일은 자꾸 밀려갔다. 업무가 혼란스러워질수록 스트레스가 많아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어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어쩐지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았고, 그것이 업무를 정확하게 똑바로 처리하지 못한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마음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가까스로 주말이 되어 잠시 숨을 돌렸지만 다음 주에 해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또 부담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째서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할까. 삶이 너무 무겁고 버겁게만 느껴졌다. 집안 상태 또한 말이 아니었다. 올해 10살이 된 개는 결석 수술을 받은 후 피부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 잠시도 참지 못하고 온몸을 격하게 긁어대는 통에 새벽에 가족들의 잠을 깨우기 일쑤였다. 잠시라도 넥 카라가 벗겨지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가려운 곳을 물고 긁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개를 걱정하는 마음과 스트레스, 개가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더해서 부모님의 건강상태 또한 걱정스러웠다. 많은 것들이 불길한 사건을 암시하는 복선이 될 것처럼 불했다. 언제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몰라 지뢰밭을 걸어가는 것처럼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모든 상황에서 절망과 스트레스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게 되었다. 그 친구를 알아가는 동안에도 여러 부분이 삐걱대는 것 같았고 마냥 좋거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원래 연애가 이렇게 힘든 건가, 그냥 안 맞는 건가. 어쩔 수 없이 붙잡고 있는 걸까. 구명조끼나 튜브 같은 것처럼. 그런 의심이 들면서도 그 친구가 있어서 힘을 내는 나를 발견하면 이런 관계가 너무도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어서 그런지 한결 수월하게 느껴졌다. 직장이나 집안의 비극에 잠겨 있지 않을 수 있었다. 일상을 사는 데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됐다. 밤에 늦게 잠들어도 아침에 거뜬히 일어날 수 있었다.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는 느낌은 분명했다. 약이 없이도 나의 일상을 버틸 힘이 충분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이 관계를 이어갈 이유는 충분했다.


여전히, 당연하게도, 미래는 불확실하고 막막하고 그래서 불안하지만. 무엇 하나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에서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잠깐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한 번이라도 더 웃으면서, 소중한 마음을 나누고 싶어 진다.


요즘은 일이 많이 바빠졌고, 이 친구와 함께 주말을 보내면서 더 바빠져서, 통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 못했다. 내일은 휴가를 써서 오늘 밤 조금이라도 글을 쓰고 자기로 했다. 나는 언제까지고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을 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기 시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