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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04. 2022

올해가 채 끝나기 전에 관계가 끝났다

연인이라면 가짜 연인, 치료자라면 위험한 치료자 행세

인정해야 한다. 결국은 나도 이런저런 좋은 핑계를 대면서 그 관계로부터 내 자존감을 채워보려고, 내가 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느낌을 즐겨보려고 했던 것뿐이다.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글을 쓴 지 1달이 지났다. 원래의 일상에서 주말이면 브런치에 1편의 글을 써 왔지만, 지난 한 달은 그 시간 동안 전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낯부끄럽기는 하지만 전 연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 그 관계로 되돌아갈 생각이 없다. 흔들리더라도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그것이 오늘까지의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썼던 글을 보니 그런 표현이 있었다. 구명조끼나 튜브처럼, 내 일상을 버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리의 관계는 짧은 기간에 비해 감정의 요동이 강렬했다. 내가 마음 아프게 정신을 차린 부분은, 이제 더 이상 행복한 관계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이었다. 행복해 보이는 다른 커플들의 일상에 비하면 나의 일상은 끝없는 살얼음판, 언제 깨지거나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함께 지내는 듯한 불안정감이 내내 깔려 있었다. 마음 놓고 행복할 수 있었을까? 즐거운 이야기, 즐거운 경험, 즐거운 상상만 하며 지낼 수는 없었을까? 나는 그 부분이 가장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그럴 수 없는 관계를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겠어? 그건 너무 억울할 텐데.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의 행복을 선택하지 않고,

관계의 단절은 어쩌면 나를 위한 이기적인 선택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위해서라도 더 나은 선택이... 되기를 바란다. 


울고, 분노하고, 서운해하고, 내 잘못이라고 말하고, 서로의 가치관 차이를 타협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이었다. 그 계기가 모두 사소하게 느껴져서 나는 매번 어리둥절했다. 이게 그럴 일이야? 하지만 힘들어하는 상대방을 위해 먼저 사과했고, 달래주었고, 들어주었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새 나는 내가 우려했던 것처럼 상담자가 되어, 치료자처럼 굴고 있었다. 


먼저 이별을 말했던 것은 상대방이었다. 그리고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먼저 재회를 요청한 것도 상대방이었다. 언제나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냐고, 정말로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냐고 묻고 자신을 책임지라고 했던 것도, 서로가 서로의 것이 되어 완전한 하나가 되기를 바랐던 것도 상대방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득한 부담감과 알 수 없는 무거운 불안감을 느꼈다.


함께하면서 느꼈던 행복, 든든함, 사랑, 내 일상을 변화시키고 가득 채웠던 에너지, 내가 강해지는 기분 모두 진짜였다. 이 친구를 만나고부터 내 일상이 놀랄 만큼 좋은 쪽으로 변화되었기에 나는 우리의 관계가 긍정적인 관계라고 결론지었다. 그건 정말인 것 같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아직도 왜 우리가 그렇게 불행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헤어짐을 실감하고 나서 나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서 울었다. 삶이 너무 버겁고,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하고, 의미 없는 일상. 내 세계가 그렇게 되고 말까 봐 두려웠다. 그렇다면 나는 건강하게 이 친구를 만났던 게 맞을까, 


더 이상 내가 이 친구를 사랑하는가, 생각해 보면 물론 지금도 사랑한다. 순수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 친구를 생각하면 느껴지는 이 감정 또한 사랑의 한 형태가 맞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보다 큰 것은 안쓰러움, 동료애,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 낫게 해 주고 싶은 마음,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 아프지 않게 해 주고 싶은 마음, 연민, 연민, 연민, 모성애. 정말 쓸모없는 것들이다. 희생하는 마음, 내가 인내하고 희생한다면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 구원자가 되고 싶은 마음. 그렇게 해서, 누구도 섣불리 행하지 못하는 걸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과 그것을 통해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것만 같은 우쭐함을 느껴 보고 싶어서. 그걸로 내 자존감을 채워 보고 싶어서. 너를 통해서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감각을 느껴 보고 싶어서. 순전히 그게 다인지도 모른다. 그런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우리의 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다. 짧은 기간 동안 계속해서 삐걱거렸고, 나는 지친다고 말했고, 상대방은 계속 이럴 거라면 아프더라도 더 정들기 전에 끝내야 할 관계가 아닐까, 여러 번 말했고, 나는 한 번만 더, 꽤 여러 번, 그렇게 말하는 그를 붙잡았다. 어쩌면 그가 날 버리지 않을 거지? 여러 번 물어 왔기 때문에, 정말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였을지도, 그보다도 내게 그가 그런 식으로라도 필요해서였을지도. 애초에 그런 그와 관계를 지금까지 이어 온 것부터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지금도 어쭙잖게 바라는 것은 그의 행복이다. 그가 죽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머리를 열어서 그를 아프게 하는 모든 것들을 걷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래서 그의 머릿속에 그저 단순한 행복만을 남길 수 있다면. 그래서 그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더 이상 아프고 힘들지 않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는 걸 안다. 게다가 그런 아픔들을 머릿속에서 거두어 내고 난다 해도 그가 여전히 그일까. 그가 여전히 나를 사랑할까... 

그건 참을 수 없이 슬픈 생각이지만. 


아, 그냥 오래오래, 건강하게, 죽지 않고, 살아주기를 바란다.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우리가 이별에 대해서 말했던 아주 많은 날들 중 어느 날에 나는 너로 인해 내 일상이 너무 좋아졌기 때문에 너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그를 안심시켰던 적이 있다. 그럼 헤어지면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그가 물었고, 돌아가도 그때와 같지는 않을 거야. 내가 대답했는데. 정말 같지 않을까, 그러기를 바라는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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