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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08. 2022

다시 소설을 시작하며

마감을 앞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마음

내가 주로 이용하는 sns 플랫폼은 블로그, 트위터, 브런치이다. 플랫폼의 특징에 따라 내가 표현하는 글의 분위기와 형식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어쨌거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대부분은 공개글로 누구나 읽을 수 있다. 비공개 글이 아니라 공개 글로 작성했을 때, 나는 깊은 속내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듯한 후련함을 느낀다. 비공개 글은 어차피 누구도 읽어주지 않으니, 내가 읽는다고 해도 쓰는 것에 대한 의미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물론 비공개 글도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다시 읽어볼 때는 나 자신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공개 글을 올리고 누군가 나를 봐준다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막상 읽어 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오히려 그래서 더 좋은지도 모른다) 역시 누군가 나를 읽고 나를 알아준다는 게 좋다. 나는 언제나 읽히고 싶고 이해받고 싶기 때문이다. 


한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쓴 소설이 7월에 완성한 단편이었고, 초가을에도 소설 합평 수업을 듣긴 했지만 결국은 새 초고를 쓰는데 실패하고 여름에 쓴 단편을 퇴고해서 피드백을 받았다. 그 소설에 대한 합평을 모아서 다시 퇴고한 뒤 동서문학상 공모전에 제출하고 믹스커피를 받았다... 

어쨌든 나는 계절에 한 편씩은 단편을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가을은 그렇게 끝났고, 이젠 겨울이다. 겨울 하면 신춘문예인데, 이미 대부분의 신춘문예 제출 기한은 종료된 상태이다. 아직 마감되지 않은 신문사는 지방지 몇 곳뿐인 것 같은데, 내가 살고 있는 지역도 포함된다..(바로 오늘까지다)...


전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헤어지기 전에도, 나는 그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우리가 헤어지게 된다면... 나는 소설을 쓰게 될 거야,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경험을 소설로 옮길 때는 그것이 과연 윤리적인지에 대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물론 있는 그대로 적을 수는 없고 많은 허구적인 창작과 각색이 들어가겠지만 내가 경험했던 그 사람과 나라는 인간의 본질은 그 안에 그대로 녹아 있을 것이다. 


헤어짐을 실감하고 나서 나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올해의 마지막 신춘문예 공모를 찾아보고 있었다. 이왕 소설을 쓴다면 마감 기한이 있는 편이 좋으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그 기간이 너무 짧았다. 결국은 퇴근 후 저녁시간마다 5천 자를 쓰고 제출 마감일에는 하루 휴가를 쓴 뒤 퇴고를 하고 완성해서 마감 시간에 늦지 않게 직접 제출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정으로 그럴듯한 단편이 완성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쩐지 마냥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자꾸만 들었다. 7월에 썼던 단편으로 나는 이제 어쨌든 누군가를 설득할 만한 소설은 쓸 수 있는 역량이 있구나..라는 자신감도 얻은 상태였다.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쨌든 이렇게만 하면 나는 이 계절의 단편 초고 하나쯤은 완성하게 되는 것이니까. 아무렴 좋은 일이다. 


오늘은 휴가를 썼고, 마침 몸 컨디션도 안 좋았고(어젯밤 자다가 극심한 복통에 깨어나서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다녀왔던 것이다...) 오전 10시가 넘을 때까지 늦잠을 잤다. 꿈속에서 나는 이사를 해야 했다. 당장 내일이 이삿날인데 이사 업체를 알아보지도 않았고 짐을 하나도 싸 놓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혼자서 그 일들을 해결해야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마음이 급해 발만 동동거리고 있었다. 그건 마치 내가 하고 싶은 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랑 너무 비슷하구나... 오늘이 제출일인데 아직 초고조차 완성된 것이 없으니... 결국은 그냥 마음 편하게 느긋하게 천천히 써나가는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왜 이렇게까지 힘든데도 소설을 쓰려하는 걸까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그런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는 왜 자꾸 쓰려고 할까. 그게 마냥 쉽지 않고 어렵고 심지어는 하기 싫고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왜 자꾸 이 소설을 완성하고 싶어지는 걸까. 그것이 내가 한 경험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나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하나의 유일한 방법처럼 여겨지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내게 일어난 사건들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아야만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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