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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an 02. 2023

회복기

격리와 회복

뒤늦은 코로나 자가격리도 내일까지면 끝이다. 수요일부터는 다시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1월에는 설날이 있어서 쉬는 날이 조금은 더 있다. 얼렁뚱땅 1월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겨우 일주일을 쉬었는데 내가 어떻게 밖에 나가고 출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는 일상이 말도 못 하게 두려워진다. 그냥 그런 일상이 너무 불안하고 두렵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모든 게 다 버겁게만 느껴진다. 마음이 욱신거린다. 세상의 너무 많은 비극들이 전부 한 번에 쏟아진 것처럼 불안하다. 앞으로의 날들이 슬프거나 불길한 일의 암시로 가득 찬 것 같다. 헤어날 수 없게, 좁은 방 안이 삽시간에 물로 가득 차오르는 것처럼. 두렵다. 뭐, 어때, 필요시 약을 구명줄처럼 받아 들고 만지작거린다. 약이 있으니까. 약이 있으니까. 


격리의 기간 동안 나는 내 방 안에서, 상처 입은 동물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듯, 치유와 회복을 기다리며 보냈다. 이 좁은 방 안에서도 하루의 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린다.


책도 많이 읽고(주로 소설들, 반납할 책들을 결국 아직도 많이 못 읽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들, 백온유, 유원은 흰밥처럼 담담한 위로가 되었다. 박상영, 햄릿 어떠세요? 몇 달 전 처음 읽었을 땐 그냥 재밌게 봤던 것 같은데, 이번에 다시 봤더니 마음에 자국이 많이 남았다. 박상영 작가님의 여성 화자가 좋다. 편혜영, 한밤의 전화. 밑바닥에 깔린 그런 마음들에 공감이 갔다.)


 영화도 봤다(헤어질 결심과 콜미바이유어네임, 헤어질 결심은 작가 인터뷰나 분석 영상을 찾아보는 게 재밌었고. 콜미바이유어네임은 여름의 이탈리아 풍경이 아름다워서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 전에 봤을 땐 그냥 그랬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의외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노래도 많이 들었다(백예린의 선물 앨범을 계속해서 듣는 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의 시작과 이후까지를 선물로 담아내었는데 앨범 커버 이미지처럼 투명하고 맑다. 수채화처럼 먹먹해지게 슬프기도 하고 맑고 따뜻해서 위로가 되기도 했다. 햇빛을 받으며 낮에 들으면 따뜻하고 해가 떨어진 깜깜한 밤에 들으면 가슴이 답답하도록 슬프다.). 


글도 좀 썼고(트위터, 블로그, 브런치, 퇴고 중인 단편소설). 요가도 하고 명상도 했다. 마음 추스르고 정리할 시간이 충분히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고 생각한다. 


이십 대 초중반 때만 해도 밤이 되면 우울해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땐 주로 밤이 되면 활력이 돌고 아침엔 우울해졌던 것 같아서. 이제는 어두워지는 것에 조금 공포가 생겼다. 밤이 되면 사람이 얼마나 약해지는지를 알게 됐다. 기분이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져서 시간을 보면 잠들어야 할 시간이 지나 있다. 그럴 때 잠이 오지 않으면 더욱 공포가 커진다. 차라리 기절해서 잠들어버리고 싶다는 기분이 된다. 잠들기까지,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있어야 하는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을 어떤 비관과 우울이 헤집고 다닐지, 허무와 공허에 집어삼켜질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오후 세 시가 된 지금도 여전히 지쳐 있고, 마음이 먹먹하게 아프다. 


어젯밤에는 그의 흔적을 찾아서 sns를 뒤졌다. 그는 sns에 자신을 잘 기록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 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궁금해 죽겠다. 그 자체도 궁금하지만 그의 전 애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가 너무 궁금하다.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린 주제에(?) 그는 두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경험이 무척 많았는데 때론 그런 점이 질투가 나면서도 너무 궁금해졌다. 도대체 너희는 뭘 하고 지냈니? 뭐 하고 놀았니? 무슨 얘길 했니? 뭐가 좋았고 뭐가 싫었니, 어떻게 생각했니. 사귈 땐 어땠고 헤어지고 나서는 어땠니.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니. 그들이 발견한, 내가 모르는 너의 모습을 뭐였을까. 너 없이 전 연인들끼리 모인다면 도대체 무슨 얘길 하게 될까.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한다. 사분면 위에 흩뿌려진 전 연인들의 스펙트럼이 있다면 나는 그중에서 어떤 귀퉁이를 차지할까. 그들과 나의 공통점은 차이점은 나만의 특별함은 뭐였을까. 


 때로는 자신밖에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 같다가도 그가 애정을 주는 방식이 너무 좋아서 나는 자꾸 너 이런 건 어디서 배웠냐, 물었는데. 배우긴 어디서 배워, 하면서도 토닥토닥거리는 손길은 어디선가 전해져 온 것이겠지, 아득하게 생각을 해 봤다. 그러니까, 먼 옛날에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주었던 사랑의 방식을 배워서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해 주고, 배우고, 또 그렇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방식으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렇게 이어져 온 사랑의 일부를 내가 전달받은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겨우 두세 달을 만난 것뿐이었으니 실은 아직도 그에 대해 잘 모르는 것투성이다. 물론 그는 매력적이고 귀엽고 순수하고 사랑스러웠지만 지독하게 견디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다. 가부장제에 찌들어 자신의 발언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꼰대 한남이었고, 충동적이고 감정적이고 위험천만해서 걱정으로 속을 썩이기도 했다.

 만약 우리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서 만났었다면, 예를 들어 직장 동료라거나 일 때문에 그 밖의 목적 때문에 마주치게 된 사이였다면 나는 이 사람에게 결코 호감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나는 불편함을 느끼고 지레 그를 피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도 그런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아마 그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았을지도. 전에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사는 세계가 조금은 달랐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랑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고 신기하고...


그의 이름은 흔히 보기 힘든 독특한 이름이다. 그래서 그 이름을 검색해 보면 많지는 않아도 분명한 그에 대한 기록을 조금은 찾을 수 있었다. 인터넷 세계란 얼마나 무서운가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게 반가웠다. 그가 전에 일하던 곳에서 썼던 글, 그가 초등학생 때 모 아이돌을 좋아해서 팬클럽에 쓴 글...(그가 초등학생 때 내가 고등학생이었다는 게 믿어지는지...) 그게 너무 귀여워서 한밤중에 깔깔 웃고 말았다. 이 아이는 그때도 똑같았구나, 뭔가를 좋아하면 이렇게 열정적이 되었구나, 감정이 풍부한 아이였구나, 그러고 나서야 그가 나에게 쏟았던 순수한 사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프지만 말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정말 네가 행복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했으면 좋겠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이런저런(특히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은 편이었고 연애 경험도 많지 않아서 남자를 불편해하는 편이었다. 실은 꽤나 많이 불편해했었지...

 그와의 짧은 만남 끝에 나는 어느 정도는 사랑을 회복한 느낌이다.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상대방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믿음에 대해서. 그래서 나는 나름의 생각 정리 끝에, 그를 만났던 것이 내 인생의 행운이었다고,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해줄 수 있다. 정말이냐고, 믿지 못하겠다고 네가 반문하더라도, 이건 확실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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