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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an 07. 2023

이후에 살아갈 일상

남은 사랑은 자신에게 쏟아붓기

일주일간의 격리를 마치고 다시 출근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수면 시간이 조금은 뒤로 밀려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다. 혹시라도 알람을 듣고도 깨지 못할까 봐 잔뜩 긴장한 채로 잠들고 일어났다. 일주일을 작은 방 안에서만 생활했더니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병든 닭처럼 골골거렸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니 허리가 아팠고 오후 네 시부터는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멀미가 났다. 


자신이 없었다. 남들처럼 출근을 하고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남들처럼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남들처럼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남들처럼 운전을 하거나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문제들에서 어른스럽게 대처하며 살아갈 자신이.. 총체적인 생활과 삶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이별 후, 다시 취업 사이트를 뒤져보는 일이 일과 중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고 사랑하기로 다짐했을 때 나는 오히려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 한눈을 팔지도 않았고 일이 밀려 있을 땐 기꺼이 초과근무를 했다. 돈 벌어서 맛있는 거 사줄게, 어떤 자부심이나 자신감에 가득 차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 출근의 의미는 너,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너, 그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일을 할 에너지가 가득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는 다시 일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잃었다. 물론 돈을 써야 하는 순간에는 내가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이게 느껴지지만... 요즈음 나는 바닥나 버린 것 같다. 바닥나 버린 에너지를 박박 긁어모으며 꾸역꾸역 출근을 하고 지낸다.


어느 순간, 이제 나는 더 이상 전 연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집착이나 허전함은 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실재하는 무엇인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리운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직장 근처의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새해맞이이기도 했고 이별 후 허전한 마음과 텅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월수금은 요가, 화목은 매트 필라테스, 50분씩이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긴장도 되었고 걱정도 됐다. 다행히 강사 선생님들의 수업 스타일도 괜찮았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몸에 집중하며 명상하는 시간이 평온했다.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잔잔하게 차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내 몸만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운동 후 찾아오는 근육통 또한 몸이 깨어나는 듯 기분 좋은 감각이다. 


당분간은 내가 나를 먹여 살려야 할 것이다. 내가 나를 토닥이고, 나를 돌보고, 나를 안심시키고, 스스로를 안아 주고. 사랑의 언어를 내면화한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 주고 싶어.. 상류 어디에선가 흘러내려온 사랑은 물처럼 흡수해서 새로운 잎을 틔웠다. 

재미있게도(?) 너는 좋겠다, 나랑 사귀니까! 이런 생각을 몇 번인가 했던 적이 있다. 이제 그 사랑을 다 나에게 쏟아야지.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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