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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31. 2022

사랑의 폭력성

나는 폭력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2022년의 마지막 글이다. 올해의 시작이 생생한데 벌써 올해가 끝난다는 게 이상하다. 내년은 어떤 한 해가 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나는 뒤늦게 코로나 확진을 받아 격리 중이다. 나는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고, 맘속으론 그래 코로나라도 걸려서 한 일주일만 제발 쉬었으면 좋겠다고 체념하듯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다행히 증상이 심하지 않고 원래가 방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성격이라... 생각보다도 훨씬 잘 지내고 있다. 격리의 시간 동안 나를 충분히 회복하고 싶다. 그리고 한창 쓰고 있는 단편 초고를 이 기간 동안 다 다듬어 보는 것이 작은 목표다. 


요즘 한동안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제 오후에는 헤어질 결심을 봤다. 극본이 있을까 궁금해서 현재 구독 중인 전자책 서비스에서 검색해 봤는데 그건 없었고, 대신 영화 아가씨 극본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아가씨는 본 적이 없었고 내용도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잠들기 전 불을 꺼둔 채 전자책 음성으로 영화 아가씨 극본을 들었다. 극본은 전자책 음성으로 듣기에 꽤 괜찮은 형식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을 듣다 보니 점차 참을 수 없게 고통스러워졌다. 뭐가 고통스러웠을까... 그 폭력성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내게 성적인 접촉을 원했던 남자들을 떠올렸다. 성적인 접촉은 쉽게 사랑이 되었다가 폭력의 모습이 되었다 하며 혼란과 불안을 일으킨다. 죄책감과 불안과 상처와 너무 달라붙어 있다. 고통스러운 양가감정은 내가 진짜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헷갈리게 만든다. 사건과 상황에 대한 나의 해석은 사랑에서 폭력으로 폭력에서 다시 사랑으로 평가를 뒤엎는다. 여자의 몸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고 견뎌내야 하는 혼자만의 고통에 대해서 생각했다. 도대체 여자는 어디까지 지혜로워져야 하며 어디까지 강해져야 하는가?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나눈 것은 사랑인가, 폭력인가? 나는 너를 사랑해야 하는가, 미워해야 하는가? 고마워해야 하는가, 복수해야 하는가?


다시 이별하고 나서 나의 꿈은 편안해졌다. 잠에서 깨어나고 나면 그 꿈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편안하고 기분 좋은 꿈이었다는 것은 느껴진다. 그런데 이 뻥 뚫린 빈 공간. 그것이 쓰레기더미였다고 해도 그것을 들어낸 자리는 텅 비어서 블랙홀처럼 그 주변의 허공을 빨아들이고 있다. 나 좀 사랑해 줘, 나는 그를 보면서 애정결핍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애정결핍의 버튼이 눌려 버린 건 나인 것 같다. 제발 나 좀 사랑해 줘. 중얼거리며. 


아직 내 글의 청자는 전 연인이다. 그에게 내 SNS를 공개한 것이 잘한 일인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브런치만은 공개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긴 하다. 그는 헤어지자고 말한 후에(혹은 그전에?) 바로 나를 언팔로우해서 내 마음 한 귀퉁이를 끊어 놓더니 겨우 하루 뒤에 다시 나를 팔로우해서 뭔지 모르게 나를 안도하게 했다. 헤어졌어도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게 내게는 중요하다는 거다. 나는 SNS통계에서 그가 나를 몇 번 방문했는지를 찾아본다. 오히려 내가 더 중독적으로 그 횟수를 살펴본다. 나는 다섯 번 열 번 넘게 통계수치를 확인하고 너는 겨우 하루에 한 번, 겨우 하루에 한두 번, 나를 찾는구나, 그럼 어쩐지 약이 오른다. 나를 더 봐줘, 나를 더 찾아줘, 나를 더 생각해 줘, 헤어졌어도 나를 사랑해 줘, 나를 그리워하고 오래 기억해 줘, 나에게 집착해 줘. 헤어지고 나서야 나는 그렇게 요구한다. 그가 약이 오를 만한 글을 쓴다.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을 만큼 웃긴 글도 써 올린다.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예쁨 받는 존재라는 글을 쓴다. 내가 무척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으며 나름 재능 있다는 자랑 글도 올린다.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남의 노래를 내 것인 양 슬쩍 올려서 낚싯줄을 던져 놓고 기다린다. 그럼 고맙게도 너는 몸은 좀 어떠냐고, 아프지는 않냐고.

그러면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짓고는 또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가, 

또 이런 장난 같은 일들의 반복이다. 

이젠 누가 더 미친 건지도 알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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