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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an 28. 2023

함께 글 쓰는 친구가 있다면

글을 통해 더 깊어지는 관계가 있을 것이다

삶의 국면이 몇 번씩, 또렷하게 바뀌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최근 나는 내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느끼고 있다. 지난 인연이 끊어지고 새로운 인연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기. 


 이제 겨우 서른하나지만 살면서 좋은 인연이 생각보다 흔치 않다는 것을, 그만큼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내가 마음을 잘 열지 않고 관계 맺는 것에 서투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스무 살 때는 나의 앞날에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들이 쏟아질 만큼 충분히 주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른하나가 될 때까지, 그런 인연은 아주 드물게 주어지거나(그러니까... 나는 인연이라는 것이 내가 이루거나 쟁취하거나 성취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주 수동적으로, 비가 내리기를 기도하는 것처럼 그저 내게 주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는 없는.) 혹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마음속 깊이 차오르는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 그토록 주어지기 힘든 것인 줄은 몰랐다. 어쩌면 나는 유독 인복이 없어 외롭게 고립된 채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거는 기준이 너무 높거나 비현실적인 것일지도. 어쩌면 나는 그만큼 일찍이 체념하고, 관계에 대해 노력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기쁨과 성취를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 연인과 두 번째로 헤어지고 나서, 이제는 정말로 끝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두 번을 헤어지고 나니까 더는 아쉽거나 미련이 남지 않았다. 허전함과 공허함은 컸지만 점차 그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메워졌다. 앓던 이를 뽑아낸 것처럼, 아픔은 잠깐이었다. 이가 뽑혀나간 자리는 생각보다 금방 아물더라. 함께했던 시간이 잠깐이었던 만큼, 그가 내게 고작 어금니 하나뿐의 비중이었다는 것이, 다행이기도 하고. 

 나는 금방 이전과 다름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그는 요즘 종종 내 블로그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른다. 얘는 무슨 생각일까, 짧게 의문이 들었다. 나처럼 아무렇지 않아 졌을까. 그냥 평범한 나의 독자 1이 되었을까. 내가 쓰는 일기들이 재밌긴 하지. 그냥 심심했을까. 습관이 되었을까. 버릇일까. 나랑 다시 만나고 싶은 걸까. 내가 그립나. 다른 사람을 만나려다가 실패했을까. 역시 나만한 사람은 없다고 느꼈을까.  하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만약 그가 너무 힘들다며 연락을 해오더라도 나는 이제 그저 아는 사람 1의 입장에서 흔하고 뻔한 말만을 해주게 될 것이다. 혹여라도 다시 만난다는 건, 절대 절대로.


  충분히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되고서야, 아, 그 아이는 이런 점은 참 별로였지. 그런 사람이랑 같이 지낸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지. 아마 반려자로서 함께 살아야 한다면 정말 많이 힘들었겠지. 그런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됐다.

 그러는 한편 나는 그렇다면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는 있을까. 괜찮은 사람.. 이란 뭘까. 그런 사람이 나를 사랑할까. 그런 회의감이 들었다. 공포. 공포가 있었다. 남자와의 관계에서 내가 입게 될 해악에 대한 공포. 어쩔 수 없이 내게 주어질 아픔이나 고통 같은 것이, 지긋지긋함과 분노와 홀로 인내해야 하는 시간들과 홀로 싸워 이겨내야만 하는 것들이 뻔하디 뻔한 드라마의 흔한 소재처럼, 몇십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진부하고도, 집단적인 분노가 서려 있는 이야기들처럼, 예견되었다. 남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 쪽으로만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더 나는 이 모양이 되었나. 남자라는 존재를 마음 놓고 신뢰하기는 정말 어렵구나. 이건 나의 뿌리 깊은, 이전 세대부터 이어져 온 문제인지도 모른다. 


 전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나는 허전함과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 이런저런 것들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요가를 시작했고 독서모임에 가입했고 합평 수업을 등록했다. 직장에서는 인사이동이 있어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고 최근 복직한 언니가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껏 나를 많이 숨기고 살았다. 특히 직장에서는 딴짓(?)하는 것을 들켜 봐야 좋을 일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나의 SNS나 브런치 등을 비밀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퇴근 후 대학원에 다녔을 때도 글을 써서 상을 받았을 때도 그 사실을 숨겼다. 주말에 무엇을 하는지도(스터디 카페에서 글을 쓴다) 퇴근하고 뭘 하는지도(합평 수업을 듣는다) 비밀에 부쳤다. 누군가 뭐 했냐고, 뭐 하냐고 물으면 누워 있었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아주 쉽고 간단한 알리바이가 완성된다. 나는 그만큼 재미없고 알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의 관계와 나의 글쓰기마저도 외롭게 만들며 지내왔는지 모르겠다. 혼자 쓰는 것의 외로움이 은근히 컸다. 온라인상에는 서점에는 그토록 글 써서 세상에 내놓는 사람들이 많건만 내 주변에서는 책을 읽는다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상 사람들 중에 나 혼자만 글 쓰는 것처럼 외로웠다. 나도 주변에 함께 쓰는 문우들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쓰는 것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서로가 쓴 것을 읽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목마른 줄도 모르고 목마른 채로 지냈던 것 같다. 글 쓰는 친구들이 있다면, 나는 어쩌면 그들과 또 가득 차오르도록 충만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최근 나는 내가 취미로 소설을 쓴다는 것을 오픈하면서 소설을 쓰는 취미를 가진 이들을 두 명이나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인터넷 속에나 존재하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게 된 것처럼 놀라고 반가워했다. 함께 쓰자고, 그토록 듣기 힘들고 또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 그 한 문장만으로도 내가 계속해서 쓸 에너지는 충분해진다. 이런 공동체를 점차 키워 나가고 싶다는 생각. 함께 오래 쓰고 나누고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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