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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Feb 18. 2023

조심스럽게 기록하기

말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해서

작지만 소중한 행복이 있다. 후 불면 떠나갈까 두려워 소중히 붙들게 되는 행복. 손에 움켜쥐면 허상처럼 사라져 버릴까 조심스레 손바닥 위에 얹어 둔, 작은 촛불처럼 연약하게 흔들리면서도 밝은 빛을 뿜어내는 행복. 그런 행복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에 나는 매번 놀라고,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나의 일상에서 기댈 곳이라고는 나의 서툰 글뿐이었다, 고 생각한다. 나의 블로그 글을 보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힘들 때마다 글을 남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때의 내게는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나 희망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변화가 있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이건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도 미리 분석해 놓을 필요가 있다. 


상반기에는 휴직을 했고 휴직을 한 초반기에는 당연히 행복했지만 휴직이 끝나가면서 불안과 우울이 격하게 밀려왔다. 약의 힘을 빌렸다. 단편 한 편을 완성했고 성취감을 얻었다. 하반기 복직 후에는 생각보다 환경이 크게 나쁘지 않았기에 잘 지내는가 싶었지만, 9~10월 무렵 여전히 모든 것들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있었던 일들은,


1. 운전을 시작했다.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거지만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내고...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내게 통제감과 능력이 있다는 것이 자신감을 주었다. 


2. 롤러코스터 같은 연애에 시달렸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정상까지 올라간 다음 밑바닥의 고통까지 곤두박질치는 과정이 다 담겨 있다. 되새겨보면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험에 후회는 없다. 어떤 면에서는 나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고, 내가 갖고 있던 어떤 두려움으로부터 조금은 해방되기도 했다. 12월부터 쓰고 있는 단편의 주제를 잡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사랑을 모르는 이들이 사랑 아닌 것을 경험하면서 사랑에 대해 어렴풋이 알아가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한 경험이다. 


3. 한 점의 미련도 남지 않을 만큼 충분히 시달리고 나서, 마침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의 회복기를 가졌다. 다행히 잔기침 말고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기에 혼자만의 생각정리를 실컷 할 수 있었다. 격리 기간 동안 잘 먹고(회사에 있을 때는 계속 먹을 수 없어서 많이 먹지 못했는데 격리 기간에는 아무 때나 틈틈이 자주 먹을 수 있어서 살을 좀 찌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잘 자서 체력 보충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때부터 체력이 꽤 좋아져서 삶의 질이 올라간 것 같다고 생각한다. 


4. 운동을 했다. 격리가 끝난 후 한 달 동안 운동을 등록하고 월화수목금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다. 어느 정도 체력이 있는 좋은 컨디션에서 자신에게 잘 맞는 운동을 시작하니 몸과 마음에 활력이 생겼다. 명상에 가까운 요가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되었다.


5.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누구라도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외로움에 시달리며 독서모임에 참여했고,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운 모임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함께 글 쓰는 취미를 가진 친구를 알게 되었고,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취미생활을 함께하기로 했다. 이것만으로도 든든하고 잔잔한 행복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게 되었다. 


6. 합평수업을 신청했다.... 빠듯한 와중에 시간을 내서 누군가의 작품을 읽고 내 작품을 완성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이 소중하다. 나의 생각과 의견을 정리해서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주는 행복에 대해서 느끼고 있다. 나의 단편소설을 완성하게 되는 과정은 지난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과 성취감을 준다.


7. 직장 내에서의 우정을 키웠다. 팀장님과의 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놀랍게도 이제야 느끼고 있다. 팀장님과의 관계는 시작부터 삐끗거리고 힘든 과정을 지나왔지만 요즘은 우리의 관계가 우정이라고 느껴진다. 팀장님이 나를 향해 보이는 이해와 관용의 노력을 느끼고 있다. 나 또한 그에 보답하며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생겨난다. 새로운 직원들이 몇 명 더 오게 되어 일의 부담이 줄어들기도 했다(이게 큰 건가..ㅎ). 그리고 이들과 특별히 모나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나는 온전히 내 모습이 되어, 자유롭게 나를 표현할 수 있다. 숨 쉴 수 있다. 건강하지 않을 때의 나는 웃긴 일을 앞에 두고도 남들 앞에서 웃음을 참지만, 요즘은 별것 아닌 일에도 사무실이 떠나가라 웃는다(이것도 좀....).


8.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오픈하면서 글 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소개받게 되었다.(물론 직장에서는 여전히 대부분 숨기고 있다.... ^^) 직장 내에도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진다. 글을 쓴다는 공통점만으로 우리는 영혼의 친구를 만난 것처럼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열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뜬금없지만 오늘부터 새로운 친구와 만나보기로 했다. 


9.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기로 했다. 멀리까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당장의 즐거움에 집중할 것이다. 아낌 받고 사랑받고 챙김 받는 것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음미한다. 아무런 기대 없이, 오히려 마이너스의 기대를 갖고 청바지에 니트 입고 나간 소개팅이 잘 될 줄은 몰랐다...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생각보다 즐거웠고 생각보다 괜찮았다. 마음이 편안했다. 첫 만남에 겨우 두 시간을 카페에서 보고 헤어졌을 뿐이었는데, 결정은 금방 났던 것 같다. 별다른 고민을 할 것도 없이 물 흐르듯 그리 되었다. 지금의 마음은, 그 친구가 슬프게 우는 모습은 결코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형태의 사랑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랑의 모양을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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