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원 Mar 19. 2023

마감 초읽기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합평 수업에 제출할 단편소설을 완성했어야 했다. 3월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초고를 쓰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 소재도 ㅇ덕분에 겨우 건졌다. 처음에는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꽤 우울하고 비관적인 이야기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기쁨에서 슬픔을 오갈 수 있다는 게 놀랍지. 


초고는 최대한 빠르고 즐겁게 쓰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내가 소설을 쓰는 속도 면에서 보면 거의 변비나 다름없다. 이렇게 피곤스럽고 답답할 수가 없다. 4천 자만 더 쓰면 초고 분량 완성인데 도저히 무엇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지?


나는 사랑의 불안에 대해서 사랑 아닌 것에 대해서 사랑에 대한 의심에 대해서 쓰고 있었다.


이렇게 얄팍한 내가 그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아니 목표가 너무 높은 것 아닌가? 이제 나는 마감이 코앞이고 좋은 것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나의 바람일 뿐이고 이젠 그냥 뭐라도 완성만 해서 제출을 해야 한다. 


근데 정말 뭐라고 쓰지...


그의 과거가 궁금하지만 알고 싶지 않고 그에 대한 나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미래는 아득하니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곳곳에 도사린 함정처럼 나를 불안하게 한다. ㅇ는 주말 출근이 많아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를 겨우 만날 수 있다. 이번 주에는 모처럼 그가 주말을 온전히 쉬는 주였기 때문에 금, 토, 일요일을 다 만났다. 광양, 여수(발만 디딘 정도지만), 순천(도 마찬가지지만), 광주, 전주까지 돌아다니는 알차고 빡쎈 일정. 소설은 미뤄 두고 글씨는 읽지 않고.

 

내 마음을 도통 알 수가 없어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다. 순간의 진심을 믿지만 너무 먼 미래까지는 믿지 않는. 보이지 않는 부분은 모조리 불안감으로 가득한. 쉽게 감동받고 쉽게 만족하지만 또 쉽게 분노하고 쉽게 허무해지는. 허무해지는 마음. 


그럼 이 마음들을 카드처럼 늘어놓고 나서, 나는 이 중에서 무엇을 골라 볼까. 어떤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아야 할까.

작가의 이전글 2인칭의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