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원 Mar 26. 2023

느리게 흘러가는 봄

3월의 마지막 주말이 흘러가고 있다. 날씨는 오락가락하지만 분명하게 따뜻해지고 있고, 벌써 매화 철은 지나가고 벚꽃이 피어나고 있다. 개나리와 수선화가 전등처럼 노랗게 빛을 밝히고, 촛농처럼 활짝 핀 목련꽃잎들도 하나둘 떨어져 가는 계절. 


봄을 이렇게 보낼 수 있어서 좋다. 행복하다. 이런 감정이 얼마 만에 내게 주어지는 것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소중해진다. 


일요일 아침인 오늘, 알람 소리를 듣고 아침 7시 30분쯤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고, 길지만 복잡하지 않은 꿈을 꾸고 다시 오전 9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눈을 뜨고,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날이 얼마만이지? 그런 날들이 내게 주어진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어제 ㅇ와 재미 삼아 타로를 보러 갔는데,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뻔한 이야기들만 해주는 곳이었다. 뻔한 이야기 중 최근 3개월 동안 돈 또는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내가 그랬나 싶게 얼른 생각나는 일이 없어서 갸웃거릴 정도였다. 


가끔 나는 불행과 우울과 비관이란 내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과 나의 주변에 돋보기를 가져다 대고 현실을 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반대로 행복과 기쁨은 그런 현실의 어느 측면을 무시하고, 쳐다보려 하지 않고... 아픔을 못 본 척하고, 불행의 씨앗을 예견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꽃밭에서만 사는 것의 결과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나는, 내가 행복하다면 행복한 만큼 내가 모르는 것들과, 무시하고 인식하지 않는 현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지금의 이런 상태가 좋은걸, 영영 이런 안락함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지내고 싶어 진다. 


저번 수요일에는 드디어 합평받을 단편을 완성해서 제출했고, 선생님께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이번 단편은 그리 좋지만은 았았을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초고일 뿐이고, 또 내가 오래 하고 싶던 이야기를 해낸 것이니까 나는 만족하고 있다. 나의 아픔과 불안과 현실의 고통을 이제는 어느 정도 나의 소설이 감당해 주고 있다는 믿음. 그런 면에서 소설은 나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고 우리는 협력해서 이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p.s. 몇 시간 뒤 선생님께 연락이 왔고, 이번에도 많은 격려와 덕담을 받았다. 언제나 나보다 더 강한 확신으로 나의 이야기를 읽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린다. 

작가의 이전글 마감 초읽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