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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Apr 09. 2023

애인에게 나의 글을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가?

애인에게 나의 글을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은은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브런치를 쓸 때 특히 그랬다. 이번에 쓴 소설 또한, 애인이 소재를 제공해 준 덕분에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내가 과연 이 소설을 보여줄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떳떳하게 보여주기는 힘들 것 같았다. 왜냐하면 거기에 담긴 내 마음은 진실하기는 하지만, 예쁜 마음은 아니었기 때문에. 비뚤어지고 불쾌하고 냄새나는, 날것 그대로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친구의 소개로 애인을 만나게 되었다. 어느덧 50일을 지나고 있다. 처음 만나던 날을 잊지 않도록 종종 되짚어 본다. 그때 나는 브런치를 쓴다는 것도 이야기했었고, 블로그는 처음 만난 날부터 아예 공유를 했다. 블로그를 공유한 것으로 나의 많은 것들을 오픈하게 되었지만, 블로그에는 나의 내밀하고 진실한 이야기를 약간은 숨기고, 어렴풋이 흐리게 돌려 말하게 된다. 반면 브런치는 공개 글이긴 해도, 실제로 아는 사람들이 지켜보지는 않는 나만의 공간이라고 느껴져서 더 많은 것들을 터놓고 쓸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전 연애 이야기라든가... 


주말에는 애인의 집에 놀러 갔다. 이번에 완성한 소설에서는 약지에 반지를 끼워 주는 장면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애인은 실제의 그 반지를 나의 약지에 끼워 주었다. 이것은 상상치도 못한 현실이었고, 현실이 내가 쓴 소설에 겹쳐지는 듯한 장면에 약간 경악했지만, 하지만 나는 현실의 소재를 가져다가 소설을 썼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가짜 커플링이 버젓이 연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가짜 커플링은 더 이상 어떠한 기능도 하지 않고 오롯이 내게 주어져 서로만의 것이 된다. 상상 속의 애인도 지폐로 접은 반지도 더 이상 현실에는 없다. 그것들은 모두 폐기되었다. 나는 내 불안의 상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다행히 애인은 굳이 내가 드러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내게 소설을 보여주라고 요구하지도, 브런치를 보여달라고 하지도 않는다(브런치는 첫 만남 때 한번 언급한 이후로는 아예 쓴다는 말 자체를 꺼내지 않고 있다.... ^^..... 처음엔 브런치도 대놓고 공개할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약간 자신이 없어졌다. 나중에 서운하려나?).


  글 쓰는 사람의 애인으로서 그가 겪게 될 황당한 일들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계속 이렇게 내가 글 쓰는 공간에 대해서 애인이 모르고 있어도 괜찮은 건가? 이건 약간의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 영 찜찜하면서도, 내게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글 쓰고 생각을 정리할 공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긴 하다. 만약 내가 브런치를 애인에게 공개하게 된다면... 나는 또다시 비밀 공간을 만들어서 혼자만의 생각을 적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왜 굳이 말 못 하는 비밀을 간직하려고 하지? 도대체 그 비밀이 뭔데?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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