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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May 20. 2023

불안해도 괜찮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믿음

불완전에 대한 수용

저번 주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다. 요즘 커피를 끊고 있었다. 7월에 손가락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뒤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라도 있을까 생각한 끝에 커피를 끊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물을 너무 마시지 않기 때문에 커피를 안 마시면 그 공백을 물로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동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커피를 한두 잔 마시게 되면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못 자는 것도 행사 준비 때문에 긴장한 것도 나를 예민하게 했을 것이다. 


네 달 정도를 아무 탈 없이 잘 지냈던 심지어 친하다고 생각했던 동료에게 마음이 상했다. 그냥 사소한 말투, 날 선 표현, 어쩌면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런 것들에 기분이 많이 상했다. 갑작스럽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내가 예민하기 때문인지 상대방이 예의 없기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독서모임은 나를 알아가기 위한 질문들을 집요하게 던졌다. 나는 그런 시도들이 우습기도 짜증 나기도 도를 넘는 것 같기도 했다. 진부하고 뻔한 질문들로 나의 치부를 파헤치는 것 같았다. 그런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내가 왜 굳이, 화가 나기도 했고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나의 구린 면을 보고 싶지 않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인 것 같기도 했다. 오히려 그런 질문들이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리고 나의 생각과 감정과 느낌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스라이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나를 ㅈ가 몇 번이나 붙잡았다. 너는 왜 이렇게까지 나를 붙잡니, 엄마처럼 그러니. 내가 우니까 ㅈ는 당황했다. 그렇게까지 몰아붙여 놓고 내가 울 줄을 몰랐다는 게 더 웃기는 거 아니야. 내가 하는 모든 말들에 조목조목 반박만 하는 것 같은 ㅈ가 밉다가도 그래도 나 있을 때 같이 하자, 언제 할 거야, 언제까지 도망만 갈 거야, 하는 말들에 고맙기도 했다. 내가 ㅈ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ㅈ도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뭐가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ㅎ언니와 이야기했을 때는 마음이 편해졌다. 독서모임을 그만두려던 마음은 다시 계속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내가 염려했던 것보다 ㅎ언니가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프다는데도 계속하려는 애인에게 내가 싫다고 했잖아,라고 말했더니 애인이 손을 들어 올려 나를 때리려고 해서 충격을 받고 한참 동안 흐느끼는, 꿈을 꿨다. 너무 놀라서 한동안 심장이 뛰었다. 내가 울고 있어서 애인은 나쁜 꿈을 꾸었냐고 물었다. 네가 나를 때리려고 하는 꿈을 꿨어. 했더니 그는 꿈은 반대라잖아, 나는 절대 그럴 일 없어, 하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많이 놀랐겠다고, 하길래 생각해 보니 나보다는 애인이 더 놀랐을 것 같았다. 그런 꿈을 꾸는 나의 무의식은 대체 뭔데. 왜 그렇게 불안하고 왜 그렇게 두려울까. 내가 상처입을 것에 대한 두려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를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가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로 인해 관계가 소원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 탓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네 탓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피해입을 것에 대한 두려움, 아프기 싫은 마음, 그렇다면 내가 이겨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그게 나를 죽일 것 같니? 


무엇보다 확신을 갖고 싶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나 스스로와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둘 다 없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확신할 수는 없지. 중요한 것은 그래도 괜찮다는 믿음이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믿음이다. 그게 당연하다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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