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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May 29. 2023

잘 지내는 중

100일 후기

 토일월 3일의 연휴가 끝나고 5월도 끝나 간다. 가끔 한 시기가 종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어쩐지 오늘이 그랬다. 요즘 갑자기 뜨개질이 하고 싶었고 폴댄스가 배워 보고 싶어졌다. 5월 말에 있는 문학상 공모에 단편을 내 보고 싶었지만 결국 2편을 준비하지는 못했다. 저번주 목요일에 그 단편 완성을 위해 하루 휴가를 썼는데도 결국 진도를 빼지는 못했다.


  읽지 않고 쌓여 있는 책들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든다. 이북리더기를 샀지만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운동도 독서도 집안일도 실비 보험 청구 같은 일들도 귀찮고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슬금슬금 미루어 두고 있었다.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본받고 싶어 진다. 유튜브에서 일상 브이로그를 몇 편 보았다. 시간을 돌리는 시계를 가진 헤르미온느처럼 시간을 차곡차곡 알차게 보내는 사람들. 나도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채워 넣으며 속도감 있게 살고 싶다. 


 요즘은 직장에 만족하며 다니는 시기이지만 나중의 언젠가 힘든 일이 닥칠 때를 상상하면 아득하게 두려워진다. 내 상상일 뿐인데도 그렇다. 지금 직장에 만족하고 있음에도 상위의 자격증을 따고 싶고 취업 사이트를 습관적으로 뒤져보곤 한다. 종종 혹하는 자리가 보이긴 하지만 결국은 지금이 낫지, 그 새로운 일자리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결국 지금 여기에 머무르게 된다. 


 금요일에는 퇴근 후 야구장에 갔다. 그냥 우리는 공원에 온 거야, 공원에 피크닉을 왔는데 앞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는 거야. 야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나를 위해 그렇게 말해 주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토요일에는 사람이 바글거리는 지역 축제가 열리는 곳에, 그것도 두 곳이나 다녀왔는데 무슨 정신으로 다녀왔는지 모르겠다. 피곤한 남자친구에게 온종일 운전을 하게 해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갔다는 것만으로 채워지는 충족감이 있었다. 고생하고 힘들 것을 알면서도 가보지 않고 포기(체념?)하는 것은 나도 모르게 아쉬움과 섭섭함으로 남기 때문에.


  일요일은 우리가 만난 지 백일 째 되는 날이었다. 기념으로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고 꽃과 케이크를 샀고 선물을 주고받았다. 50가지 질문이 담긴 노트를 완성해서 교환하는 이벤트는 남자친구가 제안한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직접 말하지 못하고 넘길 수도 있었던 순간순간의 생각들까지 글로 담아낼 수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나의 글을 통해 이해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가 종종 말하는 것처럼 나 또한 관계의 지속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이 관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 나에 대한 흥미나 관심이나 사랑이 식을 것에 대한 불안, 나라는 사람에 대한 환상이 깨져서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그 후에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기는 하지만 의무감에 함께하는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될 정도로 어색하거나 재미가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 

 그런 불안들은 때로 벽에서 너울대는 거대한 그림자처럼, 가까이 다가가 빛을 비추어 보면 실은 터무니없이 작고 우스꽝스러운 조각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번 연휴에는 평소보다 더 많이 그 애정이 느껴져서 그런 불안들은 모두 눈 녹듯이 사라진 듯 가뿐해졌다. 어떤 거짓이나 과장이나 허풍 없이 오직 진실로 그 마음의 크기가 와닿은 것이다. 그러한 순수한 사랑을 아낌없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 깊이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고. 


 브런치에 대한 언급을 읽은 후로 남자친구는 나의 브런치가 무척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글 한 편만 보여줄 수 있겠냐는 물음에 미안, 나중에...라고 답했지만 후루룩 보여주고 싶은 마음 또한 큰 것 같다. 내가 보여 주기를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들, 막상 내보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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