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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un 25. 2023

회의감이 들 때

요즘 나는 잘 자고 잘 일어난다. 

잘 자고 잘 일어나는 것만으로 삶의 질이 꽤 좋아질 수 있다는 걸 실감한다. 원래도 불면증이 있다거나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은 잠이 오지 않아서 머리가 아플 때까지 이리저리 뒤척이며 누워있어야 했던 밤들이 있었다. 그럴 땐 아침에 일어나기도 고역이어서 끙끙대며 일어나 겨우 출근 준비를 하곤 했다. 그때는 아마 출근이 너무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의 내게 출근이 싫다는 것의 의미는 평범하게 그냥 좋아 싫어의 정도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을 파괴하는 고문과 같은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죽을 상으로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염불처럼 외며 출근을 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방호복을 입는 꿈을 꿨다. 정확히 말하면 방호복을 벗는 꿈. 방호복을 벗을 때는 오염된 바깥 면이 노출되지 않도록 둘둘 말아가며 벗는다. 두툼한 껍질 같은 그것을 벗어던질 때의 해방감. 피부에 와닿는 공기. 가벼워지고 거칠 것이 없는 몸. 어기적거리지 않는 걸음걸이.


보통의 삶, 즐거운 일상, 행복한 인생이란, 내게는 주어지지 않을 먼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웃고 있는 사람들, 우정과 호의, 반짝이며 생기 있는 대화들. 아주 어릴 때부터의 정체감으로 나는 조금 이상하고, 평범하지는 않으며,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런 면을 감추기 위해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태도였다. 

그런 태도로 살아가는 것은 눈앞에 어두침침한 필터를 한 장 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가끔 두렵다. 내가 누군가와 진심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유지할 수 있을지. 보통 나는 상대방에게 맞추어주면서 점점 나의 빛깔을 잃거나 과도하게 나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런 과정이 너무 피곤하고 고되어 관계를 끊거나 최소한의 빈도로 줄여버리고 마는 것이다. 


애인의 모습에서 이전에 알던 애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끝나버리거나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낀다. 나와의 관계가 더 이상 즐겁거나 재밌지도 않고 온통 회의감으로 가득 차버린 것은 아닐지 의심한다. 이제 더는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네. 의무감에 만나고는 있지만 이제 새로울 것도 없고 지겹고 피곤하네. 얘랑 같이 있으면 재미도 없고 말이 안 통하네... 이런 생각들로 점차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피로하고 의미 없게 느껴질까 봐. 그간 쌓아 왔던 모든 이야기들이 금세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생각들에 취해 있으면 기분은 또 금방 땅바닥에 붙어 우울해지고, 삶에서 더 좋은 것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내가 결코 그것들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내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다가, 

그 모든 상상과 공상 속에서 가뿐히 떨어져 내려서 그냥 지금 앉은 내 자리로 돌아온다. 

남의 이야기를 읽듯이, 심드렁하게, 대수롭지 않게, 납작한 하나의 텍스트처럼.


이럴 때면 정말로 그럴듯한 남이 쓴 소설에 빠져들거나 내가 이러한 모든 불안을 담아내어 소설을 써내고, 또 지구에서 일어나는 더 많은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생명체들에게 관심을 보내는 것이 어쩌면 나를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한 더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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