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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ul 09. 2023

아무런 일이 없는 오늘의 사랑

이따금 그는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내다 버리고 싶어 진다. 살아온 세월에 따라 자연스레 쌓아두고도 그 존재를 잊어 먼지가 쌓이고 빛이 바랜 물건들, 유통기한이 지나고 수상쩍은 냄새를 풍기는 식재료들, 누렇게 변색된 셔츠와 보풀이 잔뜩 일어난 스웨터들, 아무리 설거지를 해도 어쩐지 찐득거리는 플라스틱 반찬통들, 볼품없이 때가 타고 납작해져 버린 발닦개, 가끔 돌멩이로 변해 버리곤 하는 그의 애인까지...


 처음 애인이 돌멩이로 변했을 때 그가 얼마나 놀라고 참담했던지. 그때 그는 진심으로 애인과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애인은 좋은 사람이었고 돌멩이로 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때로 애인은 돌멩이나 그 비슷한 것(조약돌 같은)으로 변하곤 했고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일처럼 보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근심에 찬 표정을 할 때가 많았다. 가끔 애인이 돌멩이로 변한다고 말할 때마다 친구들은 잠시 대꾸할 말을 잃곤 했다. 그럴 때 그는 자신이 애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인지 의심스러워지곤 했다.


생각해 보니 요즘은 한동안 애인이 돌멩이가 되지 않았네, 청소를 하다가 그는 생각했다. 어느 미래에 돌멩이가 아니라(조약돌 따위도 아니라) 더한 것으로 애인이 변해버리는 장면을 그는 가끔 상상한다. 그때에 그가 얼마나 참담하고 절망적일 것일지를.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다소 지친 표정의 애인이 그의 집안에 들어선다. 머리에는 기름이 껴 있고 어깨는 축 처져서 안쓰러워 보이면서도 귀여운 얼굴이다. 그는 애인을 다정히 안아 준다. 돌멩이로도 혹은 그것보다 더한 무엇으로도 변하지 않은 오늘의 애인은 안고 있을 때 그의 몸에 꼭 맞는다.


개든 고양이든 사람이든 생명체가 잠들었을 때 그 모습을 보는 것은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심지어 그의 애인이 돌멩이로 변했을 때에도 잠들어 있을 때의 그 모습은 깨어 있을 때와는 구별되었다. 피곤에 지쳐 잠든 애인의 미간에는 옅은 주름이 져 있다. 그는 애인의 머리칼에서 몇 가닥의 흰머리를 발견했다. 그는 애인의 코끝에서 들고 나는 숨의 냄새를 맡고, 살짝 벌어진 입가에 코끝을 대어 본다. 사랑해, 정말 많이. 잠든 줄 알았던 애인이 중얼거리고,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려준 후, 그는 애인의 옆에 누워 눈을 감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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