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마감

by 지원

손톱을잘라야겠다

어쩐지 에어컨을 켜도 시원해지지 않는다

고장났을까

책상 위에는 각종 영양제들

사놓고 안 먹고 방치하다가 유통기한이 지난 영양제들을 여럿 알고 있다

책상 위에는 늘 있는 약들

꿀꺽 삼켜야 하는 알약 영양제를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거나 메슥거린다

그냥 젤리 영양제를 먹기로 했다 그건 달콤하고 맛도 있어 간식처럼 손이 잘 간다

비타민 음료를 마셨다

미풍이가 유산균 음료를 사 왔다 유산균과 더불어 칼슘과 단백질도 들어 있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현재 골밀도 수치로는 골감소증이기 때문에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 칼슘을 많이 먹어줘야 한다

미풍이가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은 진~짜 예쁘다, 내 전부, 사랑해

미풍이가 내 생일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둘 다 대 충격을 받았다. 어쩐지 원래 같으면 생일 한참 전부터 고민이 있다며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어봤을 텐데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부부가 되자마자 첫 생일을 잊어버렸다니! 생각하자 눈물이 났다. 생일날 아침 미풍이와 통화를 하는데 미풍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배변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랬구나.. 듣다가 진짜 잊어버렸구나! 했더니 미풍이는 크게 당황하며 응? 오늘? 오늘이 무슨 날이지? 하고 생각하다가 한참만에 내 생일인 것을 알았다.


미풍이는 그 일로 출근해서 오전에는 넋이 나가 있다가 점심에는 황급히 꽃다발과 레터링케이크를 샀고 오후에는 멋진 식당을 찾아 예약했다. 특이한 맛이 나는 음식들을 먹으며 미풍이의 사과를 잔뜩 받고 기분이 나아졌다. 나중에 미풍이의 생일을 한번 잊어버릴 수 있는 까묵권 1회권도 받았다


집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인테리어는 처음 얘기한 일정에서 일주일 밀렸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냐, 금요일까지는 끝내드리겠다, 진짜 금요일까지 끝내실 수 있냐고, 있다고, 했지만 죄송한데 도저히 일정이 안된다며 토요일까지... 근데 또 하자가 있길래 말했더니 그렇다면 월요일까지...로 마감 기한이 또 밀려났다.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화날 일이 많아졌다.

여러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여러 사람들을 쿡쿡 쑤시고 다니며 잘못된 점을 짚다 보면 모두가 서로를 싫어하게 되는 구조인 것 같다. 이 사람에게 험담을 하면 저 사람에게 말이 옮겨가고 저 사람은 그 사람 탓을 하고 하는 식으로 서로에 대한 분노가 커져가는 것이다.

ㅋ.. 이렇게 상처와 분노로 지어진 집에서 살아가야 한다니.. 근데 분쟁 없는 인테리어는 싸움 없는 가정처럼 있을 수 없는 것이겠지


에어컨이 진짜 고장 났나 보다 너무 덥다


가전을 살 때 5개 품목을 맞추느라고 큐커를 샀다.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기를 따로 살까 고민도 했지만 어쩌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됐다. 막상 배송 온 큐커를 보니 내가 정말 이걸 골랐었다고? 싶게 투박하고... 실망스러웠다. 주로 전자레인지로 많이 사용을 할 것 같은데 기본 세팅이 에어프라이어라서 전자레인지를 이용하려면 다이얼을 도로로록... 4칸이나 옆으로 돌려야 했고, (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나요 삼성..) 보통 편리하게 음식 넣고 30초 버튼만 띵띵 누르면 돌아가는 전자레인지에 비하면 사용하는 과정이 꽤나 불편해 보였다. 그것이 싱크대 상판에서 떡하니 거대한 두꺼비처럼 차지하고 앉아 있는데.... 밥솥과 정수기를 올려둘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싱크대를 분명 인테리어 하면서 전체 뜯어내고 상하부장을 다 새로 짠 것임에도 전자레인지나 밥솥을 수납할 자리를 따로 만들지 않아서 죄다 올려놓고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33평 집이지만 이상하게 부엌이 너무 좁아서 뚱냉 하나에 ㄱ자 싱크대로 부엌이 꽉 찬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큐커 또는 밥솥을 다용도실로 빼놓고 써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좀 번거로울 텐데.. 모르겠다 ㅋ


나는 결혼을 하면서 어쩌다 보니 양가 도움으로 직장 근처에 괜찮은 아파트도 사게 되었고 인테리어도 하게 되었고, 남편도 나도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돈을 벌고 누군가 본다면 정말 부러움 받을 상황이지만 이상하게 종종 모든 걸 관두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습관처럼 그냥 , 여름에는 너무 덥다! 겨울에는 너무 춥다! 혼잣말이 나오듯이, 피곤하면 피곤하다, 졸리면 졸리다, 혼잣말이 나오듯이 문득 그냥 죽고 싶다는 혼잣말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출근이 너무 하기 싫다....


다른 사람 브런치 글을 보다가 회사에서 슬랙을 쓴다는 걸 보았다. 재작년엔가 들었던 시나리오 수업이 아니었다면 슬랙이라는 게 뭔지도 난 몰랐을 것이다.

근데 정말 에어컨이 고장 난 것 같다....


삶의 슬픈 면들만 보고 사는 것처럼

온통 날카로운 파란색의 절단면

고운 유리 모래


식칼로 손을 벴다. 피가 많이 났고 혈관이 절단되었을까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할까 너무 공포스러웠다. 식칼로 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뜯으려 했던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시간을 돌리고 싶다.. 너무 많이 하는 생각이다

전에는 수술, 이라는 단어를 간단하게만 생각했지만 한번 칼을 댄 부위는 다시는 이전과 같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2년 전에 대학병원에서 손가락 수술을 받은 후로, 수술이 정말 성공적으로 끝났음에도 재활은 완벽할 수 없었고 나는 아직도 손가락 관절이 아파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두려워하며 큰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황당할 정도로 상처가 작았다

응급하지 않은 환자가 응급실에 가면 안 된다고 하지만 응급하지 않은 줄 알고 병을 키운 적이 있어서 너무 두려웠다


미풍이는 가끔 내가 입밖에 꺼내지 않은 내 마음속의 무거운 무언가를 먼저 알아줄 때가 있다

이 사람과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함께 살아본 날이 많지 않지만



출근은 너무 싫고 인생의 대부분이 출근인데

그래서 살기 싫은 거면 당연한 거 같기도 하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학교도 4년 다니면 졸업했는데 여긴 다녀도 다녀도 졸업이 안되는 것이다 30년을 더 다녀야 졸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 늙어 죽을 때가 되어서야... 죽기전에 졸업시켜 주는 것이다

너무 떠나고 싶다 이 익숙하게 지겹고 낯설게 지겨운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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